남북문제
韓·쿠바, 북한의 오랜 수교 방해로 극비 진행
뉴스종합| 2024-02-15 11:43
쿠바의 대표 관광지인 말레콘 방파제에 모여 있는 쿠바 시민들 모습 [로이터]

한국이 북한의 ‘형제국’으로 여겨졌던 쿠바와 전격 수교를 맺으면서 북한의 충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북한이 한국과 쿠바공화국 유엔대표부가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외교 공한(公翰) 교환을 통해 양국 간 외교 및 영사관계를 수립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지 못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 1960년 8월 29일 쿠바와 수교를 맺은 이후 올해로 64주년을 맞았다. 수교 당시는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에 성공한 1959년 이듬해였다. 양국은 이후 냉전시기를 거치며 ‘반미’와 ‘반제’, ‘사회주의’를 공통분모로 긴밀히 교류하며 ‘형제국’ 관계를 유지해왔다. 김일성 주석과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개인적 유대도 기반이 됐다.

체 게바라와, 라울 카스트로, 피델 카스트로 등 쿠바의 주요 인사들도 잇달아 북한을 방문해 환대를 받았다. 49년간 쿠바를 통치한 피델 카스트로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2016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하면서 미국과 쿠바 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쿠바의 외교노선이 일부 바뀌는 와중에도 북한과 쿠바의 우방국 관계는 지속됐다.

쿠바는 북한이 핵·탄도미사일 개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고립된 상황에서도 북한에 호의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도 국가평의회 의장이던 지난 2018년 평양을 찾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난 바 있다. 북한도 한국과 수교를 맺지 않고 있던 쿠바에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김 위원장은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2021년 4월 라울 카스트로에 이어 쿠바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되자 사흘 연속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2022년 쿠바 호텔 가스유출 폭발 사고와 원유탱크 폭발 사고 때도 위로 전문을 보냈다. 올해 들어서도 북한과 쿠바 간 외교는 지속됐다. 김 위원장은 새해 첫날 디아스카넬 대통령에게 쿠바 혁명 65주년 축하 축전을 보냈다. 김 위원장은 장문의 축전에서 “사회주의 위업의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 속에서 맺어진 두 당, 두 나라 사이의 전통적이며 동지적인 친선협조 관계가 앞으로 더욱 공고 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했다. 북한과 쿠바는 지난달 21∼22일 아프리카 우간다 캄팔라에서 열린 제3차 개발도상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났다.

지난 1일에는 에두아르도 루이스 코레아 가르시아 신임 쿠바대사가 북한에 새로 부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정작 한국과 쿠바 간 수교 논의를 막판까지 몰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국과 쿠바가 수교한 이튿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관련 소식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북한 당 중앙위원회는 한국과 쿠바가 수교한 당일인 14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북한 주재 외교단 성원들을 위한 경축 연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주북 러시아 대사관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경축 연회 사진을 보면 새로 부임한 가르시아 대사도 연회에 참석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 정부는 북한과 쿠바의 ‘특수관계’를 고려해 수교 논의를 극도의 보안 속 속도감 있게 진행했다는 후문이다. 혹시 모를 북한의 ‘몽니’ 등 방해책동 차단을 위해서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전날 밤 수교 발표 뒤 “북한이 수십 년 동안 수교를 방해해왔으니 이번에 전격적으로 빨리 발표한 것”이라며 “쿠바가 우리나라와의 경제 협력이나 문화 교류에 목말라 있었던 만큼 북한에 알리지 않고 우리나라와 수교하고 싶어 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향후 북한이 쿠바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된다. 일각에선 북한이 쿠바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국제무대에서 고립무원인 신세인 만큼 기존 쿠바와의 관계를 고려해 수위를 조절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북한이 한국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고 규정한 상황에서 한국과 전격적으로 수교한 쿠바에 대한 입장이 예전 같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러시아 등 비서방 국가를 중심으로 한 제한적인 외교관계 강화에 집중할 가능성도 있다. 전날 북한 주재 외교단 경축 연회에 참석한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장은 “우리 당과 국가는 반제자주를 절대 불변하고도 일관한 제1국책으로 틀어쥐고 앞으로도 대외정책적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며 사회주의 나라들과 자주와 정의를 지향하는 나라들과의 단결과 협조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신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