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이 골을 넣고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다. [사진=메이킹풋볼]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정종훈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대학 축구가 뒤늦게 기지개를 켰다. 지난달 12일부터 28일까지 강원 태백시 일대에서 추계대학 축구연맹전이 백두산기와 태백산기로 나뉘어 진행됐다. 특징은 ‘언더독’ 사이버대학들의 분전. 열린사이버대와 한국사이버외국어대(이하 사이버외대)가 4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눈물 젖은 빵’을 한 번씩 먹어본 자들의 반란이었다.
사이버외대 김찬(21)도 그 중 한 명이다. 태박산기에 출전한 사이버외대는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숭실대에 0-3으로 완패했지만 이후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서울디지털대(2-0 승), 전주기전대(0-0 4PSO2 승), 송호대(2-0 승), 동원과학대(1-0 승)를 차례로 꺾으며 4강에 올랐다. 결승행 마지막 문턱에서 동국대에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5로 패했지만 희망을 봤다.
김찬은 종횡무진 무대를 누볐다. 간절함 없는 선수가 어디 있겠냐마는 유독 김찬은 더 악착같았다. 90분 내내 스프린트를 지속했다. 공을 소유하지 않는 동안에도 움직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개인 득점은 다소 늦게 터졌다. 조별예선 내내 골이 터지지 않아 부담감이 따랐지만 송호대와의 16강에서 골맛을 맛보면서 환히 웃었다. 과감한 시도가 빛을 본 순간이다.
김찬은 이번 대회에 유독 목말라했다. 오랜만에 국내에서 뛰는 경기였기 때문. 양동FC U-18 졸업 후 지난해는 일본 텐리대에서 축구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비롯해 생활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1년 만에 국내 복귀를 택했다. 그는 “멘탈적인 부분을 돌아봤다. 열정이 대단하더라. ‘축구 아니면 안 된다’는 간절함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김찬의 짧은 축구 인생 속에 우여곡절이 숨어있다. 과거에 포철동초(포항 U-12), 포철중(포항 U-15)을 거치면서 승승장구했다. 연령별 대표팀 경험도 있다. 측면 수비수 유망주로 이름을 알려 정우영(21 프라이부르크), 이규혁(21 제주유나이티드) 등과 함께 2014년 제2회 난징하계청소년 올림픽도 다녀왔다. 고교는 오산고(서울 U-18)가 손을 건네면서 상경했다. 주전은 아니지만 후반에 교체 투입되면서 성장폭을 늘려갔다. K리그 유스 시스템 속에서 프로 데뷔 꿈을 키웠다.
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다가왔다. 고교 1학년 말미에 좌측전방 십자인대의 파열 판정을 받은 것이다. 평소 무릎 통증을 참고 뛴 것이 화근이 됐다. 부상으로 인해 약 1년 간 축구장과 멀어졌다. 하지만 김찬은 좌절하지 않았다. 도리어 재활 기간을 기회로 살리려고 마음을 먹었다. 성장이 정체될 수 있는 순간에도 다른 방향성으로 스스로 자극을 부여했다.
김찬이 양동FC U-18에서 반등을 꿈꿨다. [사진=선수 본인 제공]
그리고 새 도전에 나섰다. 양동FC U-18로 둥지를 옮김과 동시에 미드필더로 포지션 변경을 꾀했다. 짧은 축구 인생의 큰 변화였지만 양동FC 권태규 감독도 김찬을 적극 지지하면서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2016년 한 해를 부상으로 모두 날리면서 유급까지 당했지만 착실하게 재기를 꿈꿨다.
복귀는 화려했다. 김찬의 도전은 ‘신의 한 수’였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4강에 입상하면서 조금씩 기량을 끌어올렸다. 이듬해에는 경기도꿈나무축구대회 우승, 대통령금배 4강에 오르면서 바닥을 찍고 반등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관계자 레이더망에 들어 일본 대학도 다녀오게 됐다.
김찬의 축구인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유독 김찬이 강한 끈기를 보이게 된 것은 우여곡절 인생사 덕분이었다. 김찬은 “부모님을 비롯해서 주변 은사님들께서 많이 잡아주셔서 감사하다. 늘 마음이 새롭고 성장할 수 있는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양동FC U-18 3학년 시절의 김찬이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선수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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