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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올림픽 결산] (7) ‘노메달’ 한국탁구, '정영식 키워야 암흑기 극복한다'
뉴스| 2016-08-23 00:17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임재원 기자]

■ 사상 최초 올림픽 노메달… 암울한 한국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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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획득 실패로 좌절하는 서효원. [사진=뉴시스]


한국탁구가 올림픽 전통의 금밭이라고 표현하기는 이제 좀 어색해졌다. 중국선수들이 워낙에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고, 일본 싱가포르 독일 홍콩 등도 강세를 보이고 있는 종목이다. 한국은 그 중에서도 항상 2·3인자 정도의 위치에 서있었다. 1988년 탁구가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서울 올림픽에서 유남규가 남자단식 금메달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언제나 메달 하나 정도는 획득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은 유남규, 현정화, 김택수, 김경아, 유승민 그리고 주세혁까지 걸출한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그 명맥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끊겼다. 시작부터 어긋났다. 여자단식에서 2004년 김경아 이후 12년 만에 메달을 노렸지만 처참히 무너졌다. 한국에서 세계랭킹이 가장 높은 전지희(세계 11위)가 먼저 무너졌다. 여자 단식 4라운드에서 싱가포르의 유멩유(세계 12위)에게 발목을 잡혔다. 힘 한 번 못써보고 1-4로 완패를 당한 것. 맏언니 서효원(세계 21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3라운드에서 미국의 릴리 장(세계 86위)을 힙겹게 꺾은 서효원은 4라운드에서 대만의 쳉이칭(세계 10위)에게 패하고 말았다.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막판 집중력이 무너지면서 3-4로 패했다. 결국 기대했던 여자단식은 준결승도 가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남자 단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상수(세계 19위)가 첫 테이프를 잘 못 끊었다. 3라운드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겨진 루마니아의 아드리안 크리산(세계 54위)에게 3-4로 무너졌다. 주세혁을 대신해 단식 출전 기회를 얻은 것을 제대로 보상하지 못했다. 그나마 정영식(세계 10위)은 조금 나았다. 3라운드까지 순항한 정영식은 4라운드에서 세계 최강인 마룽(세계 1위)를 맞아 2-4로 아깝게 패했다. 매 세트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한국탁구의 자존심을 지켰다.

가장 유력한 메달 후보 종목이었던 단체전에서도 한국은 무너졌다. 여자탁구는 1라운드부터 힘겨웠다. 비교적 약체인 루마니아를 만나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3-2로 겨우 꺾고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라이벌 싱가포르를 만나 괜찮은 경기를 펼쳤지만 아쉽게 2-3으로 패하며 역시 준결승 무대도 밟지 못했다.

여자탁구에 비해 남자탁구 단체전은 조금 아쉬웠다. 1·2라운드에서 브라질과 스웨덴을 완파하며 순조롭게 4강까지 진출했다. 4강에서 세계 최강 중국에게 완패를 당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정영식이 좋은 활약을 보여줘 동메달에 대한 희망은 이어갔다.

동메달 결정전 상대는 독일이었다. 티모 볼을 중심으로 유럽 최고수준의 탁구를 펼치는 팀이다. 단체전에서도 항상 한국, 일본과 2인자 자리를 다투는 팀이기도 했다. 출발은 좋았다. 정영식이 바스티안 슈테거(세계 22위)를 상대로 3-2로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 한 때 슈테거의 수비력에 당황했지만 이내 극복하고 멋진 승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문제였다. 2단식에서 맏형 주세혁(세계 14위)이 독일의 에이스 디미트리 옵차로프(세계 6위)를 만나 풀세트 접전까지 이끌었지만 막판에 체력이 떨어지며 2-3으로 경기를 내줬다. 이어서 정영식-이상수가 나선 3복식과 주세혁이 나선 4단식에서 연달아 패하며 결국 노메달이라는 결과만 남게 됐다.

■ 암울한 한국탁구, 그나마 위안거리는 정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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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메달 결정전에서 슈테거를 꺾고 기뻐하는 정영식. [사진=뉴시스]


이번 리우올림픽은 한국탁구에게 악몽과 같은 대회였다. 28년 만에 노골드라는 최악의 수모를 겪었다. 더군다나 그동안 중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볼 만하다고 여겨졌던 단체전에서도 메달을 따지 못한 것은 수모에 가깝다.

특히 여자탁구는 이제 변방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전지희의 드라이브는 더 이상 상대선수들에게 위협적이지 않다. ‘여자 주세혁’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자 수비형 탁구의 대표 격인 서효원 역시 예전만 못한 모습이다. 커트가 번번이 위로 뜨면서 오히려 상대방에게 찬스를 내주고 있다.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싱가포르 등에도 크게 밀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희망을 준 것은 남자탁구의 정영식이었다. 비록 남자단식 4라운드에서 떨어졌지만 마룽을 상대로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동안 ‘안정적인 탁구만 한다’, ‘국내용이다’라는 일각의 편견을 완전히 깨주며 마룽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대진운만 조금 더 좋았다면 동메달까지는 충분히 노려볼 수 있을 컨디션이었다.

단체전에서도 가장 빛난 것은 정영식이었다. 준결승전 1단식 경기에서 런던올림픽 단식 금메달리스트인 장지커(세계 4위)를 만났지만 기죽지 않았다. 과감한 드라이브를 바탕으로 풀세트까지 경기를 이끌었다.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패배였다.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것이 정영식이었다.

올림픽에서의 활약으로 정영식은 세계랭킹에서도 톱10에 진입하게 됐다. 당당히 세계수준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정도가 된 것이다. 한국탁구에서 정영식의 존재감은 더욱 부각되어야 한다. 안재형-유남규-김택수-유승민-주세혁으로 이어진 남자탁구 에이스 계보를 책임져야할 선수다. 더군다나 이번 대회를 끝으로 주세혁까지 은퇴를 하게 된다. 정영식의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안 좋은 과거는 빨리 잊는 것이 좋다. 이제는 4년 후의 도쿄 올림픽을 바라봐야 한다.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곳에 열리는 대회인 만큼 리우 때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 현재 희망은 정영식이다. 조금만 더 실력을 다듬을 수 있다면 탁구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는 한국탁구가 부활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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