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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올림픽 결산] (4) 발펜싱으로 정상 오른 한국, 느린 발에 발목 잡히다
뉴스| 2016-08-2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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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효하는 한국 펜싱' 박상영이 남자 펜싱 에페 16강서 엔리코 가로조(이탈리아)에 승리한 후 환호하고 있다. 박상영은 결승에서 헝가리의 게자 임레에 15-14로 역전승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뉴시스 AP]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지원익 기자] ‘할 수 있다’ 효과가 전국을 강타했다. 그 주인공은 한국 펜싱 대표 팀 박상영(21 한체대)이다.

한국 펜싱은 이번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박상영 남자 에페 개인)과 동메달(김정환, 남자 사브르 개인)을 각각 하나씩 획득했다. 당초 펜싱 대표팀의 목표가 “색깔에 상관없이 2개 이상의 메달을 목표로 한다”고 했으니 목표는 이룬 셈이다. 그런데 어딘가 좀 아쉽다. 그 이유는 4년 전과 비교해 현저하게 준 메달 수 때문일 것이다. 런던에선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로 총 6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펜싱은 이번 대회에서 그 명성을 지켜내지 못했다. 정상등극도 어렵지만, 수성도 그에 못지않게 어렵다는 것을 이번 대회가 여실히 보여줬다.

4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펜싱

올림픽에서 유럽이 가장 위세를 떨치는 종목 중 하나가 바로 펜싱이다. 펜싱은 중세 유럽의 기사들이 연마하던 검술에서 유래한다. 펜싱은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 출범 9개 종목 중 하나로 채택됐다. 그동안 이 종목서 나온 209개 금메달 중 93%(194개)가 유럽 국가의 몫이다.

1984년 LA 대회서부터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펜싱은 1992 바르셀로나 대회와 1996 애틀랜타 대회까지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4강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김영호(남자 플뢰레 개인)가 금메달을 땄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 펜싱은 급성장했다. 이후 한국은 특유의 ‘발펜싱’으로 국제대회서 꾸준히 상위권에 랭크됐다. 그리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12개 중 7개를 휩쓸며 펜싱 부문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2년 뒤 런던올림픽에서 또 한 번 일을 냈다. 금메달 2개를 포함 총 6개의 메달을 목에 걸은 것. 전통의 펜싱강국 이탈리아(금3 은2 동2)에 이어 종합 2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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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펜싱은 이번 대회를 통해 발전 가능성을 보았다. 사진은 지난 13일(한국시간) 여자 단체 사브르 8강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서 김지연(사진 왼쪽)이 공격을 시도하는 장면. [사진=뉴시스 AP]


당시 다른 나라 선수와 임원들은 “한국선수들이 미쳤다”며 엄지를 세웠다. 100년 역사를 가진 유럽 나라들보다 선전했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렇게 한국은 '펜싱 신흥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번 리우 올림픽이 말해주듯 펜싱강국으로 계속해서 포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1등이 되면 질시와 견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느려진 발 펜싱, 대책이 시급하다

런던 올림픽 이후 한국펜싱은 ‘도전자’, ‘다크호스’가 아닌 ‘우승후보’로 분류됐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오는 경우도 잦았다. 한국의 발펜싱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는 사이 한국선수들의 플레이는 하나하나 분석 당했다. 불리한 신체조건을 스피드(빠른 발)로 극복하던 ‘한국식 스타일’이 적응되기 시작했다. 유럽의 펜싱강국들에게 한국은 견제의 대상이었다. 심판들 사이에서 유럽 텃세가 강한 까닭에 한국은 판정시비에 휘말렸다.

이러한 외부 상황서 내부적으론 세대교체에 실패했다. 런던 대회 메달리스트 김지연(28), 남현희(35), 신아람(30), 정진선(32), 구본길(27), 김정환(33)이 리우에도 나섰다. 이 선수들의 실력은 분명 세계 정상권이다. 하지만 20대 후반, 30대가 주축을 이룬 한국은 느려진 발로 세계랭킹이 떨어지는 선수들에게 잇따라 패했다. 메달권 진입에도 실패했다. 상대 선수들의 견제를 받지 않은 신예 박상영이 깜짝 금메달을 딴 것만 봐도 그렇다. 상대는 헝가리 출신의 42세 노장선수였다. 그는 10-14의 열세를 극적으로 뒤집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연속해서 치고 들어간 것이 승리의 요인이었다. 이제 한국은 세대교체와 함께 발펜싱을 변형, 발전시켜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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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의 '할 수 있다' 효과가 전국을 강타했다. 박상영은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헝가리의 게자 임레에 10-14로 뒤지고 있을 때 '할 수 있다'는 자기암시를 통해 대역전극을 이뤘다. [사진=SBS 방송캡쳐]


한국 펜싱은 좋은 재목들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 국제 주니어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초,중,고 펜싱 팀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향후 저변확대와 더불어 유망주 육성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외교력 강화도 필수다. 현재 아시아펜싱연맹 부회장은 김희용 현 대한펜싱협회 고문이다. 한국 펜싱이 국제무대에서 위상을 높이기 위해선 이 같은 인물을 지속 배출해야 한다.

당나라 태종은 나라를 새로 세우는 ‘창업(創業)’도 어렵지만, 그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새로 세운 국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수성(守成)’이라 했다.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저력을 유지하는 것, 물론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서 한국 펜싱은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 '할 수 있다'는 어린 선수의 말처럼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고 '펜싱 강국 수성'을 위한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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