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본전시 주제 ‘이방인은 어디에나’
아메리카·아프리카 원주민, 퀴어 전면
첫 전시장 닐 얄테르 작품 ‘Topak Ev’
韓작가 김윤신·이강승·이쾌대·장우성
4인작품 본 전시장 중앙관에 자리잡아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중앙 파빌리온 외벽을 장식한 브라질 작가 그룹 마쿠(MAHKU)의 벽화. 마쿠는 브라질 아마존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 후니 쿠인족 예술가 집단이다. 베니스=이정아 기자 |
한마디로 ‘탈(脫)백인’이다. 20일(현지시간) 개막한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는 서구 주류 서사에서 배제된 이방인의 존재를 전면에 내세웠다.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은 다양한 아프리카 민족을 비롯해 삶의 터전을 강탈당한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전쟁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동인, 자의간 타의건 살던 땅을 떠나 영원히 타향을 떠도는 집단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 오랜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잊힌 여성, 남녀 커플 중심의 문화 때문에 고향에서도 차별받은 퀴어(성소수자)가 서사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인 작가 4명도 이름을 올렸다.
‘나는 누구인가요(Who Am I)?’
베니스 비엔날레 VIP 사전 관람(프리뷰)으로 전시장에서 만난 331명의 다소 ‘낯선’ 작가의 작품이 건네는 듯 느껴지는 말은 복합적이다. 어조는 담담했고, 서글펐고, 그럼에도 상당히 저항적이다. ‘이방인은 어디에나(Foreigners Everywhere)’, 본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직설적이나 전시 구성은 그 자체로 정답이 아니다. 이번 본전시가 질문으로 이해되는 이유다. 특히 이방인을 주변화된 집단으로 바라보게 하지 않으려는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총감독의 섬세한 큐레이팅이 돋보였다.
본전시장에 들어서자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평생 공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할 예정인 프랑스 파리 기반 튀르키예 출생 페미니스트 작가인 닐 얄테르의 작품 ‘Topak Ev’가 전시 공간 중앙에 서 있다. 10세기께 튀르키예의 중앙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둥그렇게 생긴 텐트를 치고 살다가 이주한 유목민 ‘벡틱(Bektik)’ 공동체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설치미술이다.
이 공간을 지나면 사방으로 20세기 후반 지구의 남반구에서 만들어진 추상화가 줄줄이 벽에 내걸려 있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남미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37명의 예술가가 그린 서로 다른 그림인데, 화면은 묘하게 닮아있거나 중첩된다.
그 뒤로는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의 작은 섬이자 오랜 식민 지배를 받은 푸에르토리코의 일상을 담은 아카이빙 전시가 펼쳐진다. 푸에르토리코는 1493년 탐험가이자 항해사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한 이래 400년 가까이 스페인 식민지로 있다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미국령이 됐다. 올림픽이나 미스 유니버스 등의 대회에는 푸에르토리코 이름으로 참가하지만, 독립국은 아니다. 주민들도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 선거권은 없다. 주민 대부분이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영어로는 소통이 어렵다. 이번 전시 주제를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지금 이 땅 위의 대표적인 지역이라 할 만하다.
본전시에 참가한 김윤신(왼쪽)과 이강승 작가 베니스=이정아 기자 |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는 한국 작가도 4명이나 참여했다.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은 오직 작품의 재료인 나무에 매료돼 남미를 중심으로 40여 년간 활동해 왔고, 서울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퀴어 작가인 이강승은 백인·남성·이성으로 분류되는 주류에서 비켜난 존재에 주목해 왔다는 점에서 이들은 이번 전시 주제에 꼭 들어맞는 작가들이다.
한국 작가의 작품은 모두 자르디니 공원에 있는 본전시장 중앙관에 자리를 잡았다. 김윤신의 작품으로는 그가 평생 주력한 나무 조각 중 1970~1980년대 작업과 1990년도에 제작한 돌(오닉스) 조각까지 총 8점이 출품됐다. 모두 작가가 1970년대 후반부터 일관되게 보여주는 작품 세계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둘을 합하면 하나가 되고 둘을 나눠도 하나가 된다)’다.
구순을 앞두고 뒤늦게 ‘발견’돼 최근 국제갤러리, 리만 머핀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은 김윤신은 “이런 순간이 오리라 상상하지 못했다”며 “작업만 하느라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적인 전시는 모르고 살았다”며 참여 소감을 전했다. 그는 “젊었을 때에는 그저 작업에 빠져서 살았지만 이제는 이 세상에 김윤신이라는, 나라는 존재를 작품을 통해 내놓겠다는 결심이 생겼다”며 “이제부터가 시작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어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며 재료를 찾는 이의 마음이 됐다”며 “작업하는 그 순간에 있는 곳이 자기의 나라”라고 강조했다.
이강승의 작품은 전시장 한 공간의 벽은 물론, 바닥까지 오롯이 채워졌다. 성소수자 역사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 온 그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AIDS)으로 사망한 이들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신작을 선보였다. 잊히고 의도적으로 지워진 이들을 양피지 그림, 금실자수, 미국 알파벳 수화 등으로 형상화했다.
이강승은 “누구나 자기가 갖고 태어난 정체성 안에서 완전히 일치하며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이번 전시는)우리 모두가 지구 상에 잠시 왔다가 떠나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느껴보자는 제안이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점을 염두해 작업을 더 했다”고 말했다.
참여 작가의 40% 이상이 작고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의 또 다른 특징이다. 한국 작가 중에도 이쾌대(1913~1965)와 월전(月田) 장우성(1912~2005)의 작품이 각각 1점씩 소개됐다. 이쾌대의 1940년대작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과 장우성의 1943년작 ‘화실’은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등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동, 남미 등을 아우르는 ‘초상(Portrait)’ 전시 공간에 포함됐다. 여기에는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서구 선진국과 식민 지배국 중심의 ’글로벌 노스‘에 대응하는 개념)’에서 활동한 20세기 작가 112명이 1915~1990년 발표한 초상 작품이 벽을 가득 채웠다.
자르디니 구역의 중앙관 외벽도 이전과 달리 화려하게 장식됐다. 통상 흰색이지만, 올해는 2013년 결성된 브라질 작가 그룹 마쿠(MAHKU)가 페루와 브라질 국경 지역의 신화를 소재로 그린 벽화로 채워졌다. 지역 고유의 오리엔탈리즘이 묻어나는 색감이 인상적이다. 아르세날레 전시장도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여성 작가들로 구성된 마타 아호 컬렉티브(Mata Aho Collective)의 대형 설치 작품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베니스=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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