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른 배우를 빛내기 위한 조연, 페이스메이커임을 의식하고 들어간 작품은 ‘거울 속으로’(주연 유지태)였습니다. 저만을 위한 첫 완주 작품은 ‘소름’(2001)이었죠.”
스스로 선택한 고행을 통해 중생의 번뇌를 체험하고 이를 통해 득도하는 수행자. 김명민은 이를테면 ‘스크린의 구도자’다. “체험이 연기를 진실되게 한다”고 믿는다. ‘내사랑 내곁에’에선 루게릭병 환자 역할을 위해 20㎏을 감량했고, ‘파괴된 사나이’에선 딸을 잃은 애비의 심정을 보여주기 위해 한 숨 안자고 사나흘밤을 샜다. 이번엔 마라톤이었다.
“마라토너는 상체는 깡마르고 하체는 ‘말근육’이죠. 오인환 삼성전자 육상단 감독의 지도를 받아 두달간 훈련받았습니다. 연기자가 자신이 맡은 역할의 직업 훈련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
극중 주인공인 퇴물마라토너 주만호는 루저다. 그가 직접 제안해 바보스러워 보이는 인공치아를 끼고 영화를 촬영했다. 명확한 발성과 설득력있는 저음의 목소리가 배우로서 김명민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꼽히지만 이번 영화에선 상당부분 포기해야 했다. 인물의 어눌함을 보여주면서도 관객들에겐 대사가 정확히 들려야 했다. 촬영 전 대여섯시간씩 대사연습을 했고, 동시녹음 기사와 “잘 들려요, 안 들려요?” 확인해가며 균형을 이뤄갔다.
이제 마흔. TV와 스크린에서 언젠가는 다시 주연보다는 ‘페이스메이커’로서 뛰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명민은 “십년 후가 될까, 그 이상이 될까? 잘 모르겠다”며 “길고 가늘게 할 생각은 없다, 굵고 짧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 / suk@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 / rosedal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