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영 작가가 처음 흑유를 접한 것은 30여년전이다. 대학 산악부 동아리에서 등반하다 화전민 터에서 나온 파편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뒤로 흑유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고자 연구를 시작해 1991년 대학원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가평요를 차렸다. 흑유를 시작하고 10년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마에 불을 지폈다. 처음엔 실패를 거듭했다. 마음에 드는 색을 찾는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분청은 가마 온도가 1230도, 청자는 1270도, 흑유도기는 1300도에서 구워진다. 오랫동안 불 앞에 있다 보니 기도 점막이 모두 말라 무호흡증으로 생사를 오가기도 했다.
김 작가는 “청자와 백자는 색의 차이가 크지 않지만 흑유의 색은 무궁무진해요. 불의 온도나 굽는 방식에 따라 매번 다른 색이 나옵니다. 삼라만상을 담고 있는 고색창연한 색이 탄생할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지요.”
숱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결과 경기도가 한 분야의 최고 장인에게 수여하는 ‘경기으뜸이’(1999년)로 선정되었고, 한국을 찾는 해외 국가원수에게 그의 작품이 선물로 주어지기도 했다.
도예가 김시영씨가 경기도 홍천에 위치한 공방에서 전통 방식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
일본의 경매회사들이 참고하는 ‘일본구락부명감’에 그의 찻잔 하나가 100만엔(약 1000만원)에 책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작가의 갈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누구도 흑유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두 딸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흑자(黑磁)의 맥을 이어나가겠다고 자청했다. 이화여대 조소과를 나와 경기 세계도자비엔날레 특별전에 참여한 큰 딸 자인씨와 서울대 조소과 졸업 예정인 작은 딸 경인씨는 흑자의 빛깔을 연구하기로 결심하고 번갈아가며 가마를 지키고 있다.
김 작가는 “흑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더 대중화되고 연구도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며 “현대 도예에서도 다양한 발전이 가능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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