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를 보는 ‘보통 여자’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질투하거나 부러워하거나. 그런데 원래 ‘안 예뻤던’ 예쁜 여자를 보는 보통 여자들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몹시 질투하거나 몹시 부러워하거나다.
뮤지컬 배우 옥주현(36)은 후자의 반응을 부르는 예쁜 여자다. 그는 걸그룹 ‘핑클’의 안 예쁜(통속적인 기준으로) 보컬리스트였다.
왠 시덥잖은 외모 타령이냐고? ‘안 예뻤던’ 옥주현이 이젠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예뻐졌다는 건, 걸그룹 보컬에서 뮤지컬의 ‘여왕’이 되기까지 그가 얼마나 스스로를 단련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7일 오후 신라호텔. 뮤지컬 ‘마타하리’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류정한, 김준현, 신성록, 엄기준, 송창의 등 내로라 하는 국내 뮤지컬 톱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타하리’를 제작한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가 “이런 캐스팅은 처음이다.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라고 할 만큼 가히 ‘어벤져스급’이다.
이 ‘스타 군단’을 압도한 건 옥주현이었다. 2005년 뮤지컬 ‘아이다’로 데뷔, ‘시카고’, ‘캣츠’, ‘브로드웨이 42번가’, ‘몬테 크리스토’, ‘아가씨와 건달들’, ‘황태자 루돌프’, ‘위키드’, ‘레베카’, ‘마리 앙투아네트’, ‘엘리자벳’, 그리고 ‘마타하리’까지, 주역을 꿰차며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10년차 뮤지컬 배우다.
제작발표회에서 만난 옥주현은, 쇄골은 빛났고 손 끝은 우아했다. 짙은 자줏빛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핑크 그레이 컬러로 살짝 물들인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 넘기는 고혹적인 자태, 여기에 한치의 흔들림없는 목소리까지, 오랜 ‘단련’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마타하리 음악을 만든) 프랭크 와일드혼의 노래는 화려한 무도회 같다”느니,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달빛이 비치는 호숫가 같은 한 폭의 예쁜 그림이 그려진다”느니 하는 표현에서는 작품을 어필하는 노련함이 묻어났다.
“가사는 친절한 사용설명서”이며 “작곡가가 만든 노래를 날 것 그대로 순수하게 다가가기 위해 ‘사용설명서’를 보지 않고 ‘라라라’로 노래를 불러 감정을 잡아내려고 한다”는 말에서는 뮤지컬 배우로서 작품을 대하는 진정성이 드러났다.
외모와 애티튜드, 말 한마디 한마디까지 갈고 다듬는 그녀지만 정작 스스로를 “산만한 편”이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 성적표에 늘 써있었어요. 주위가 산만함. 그걸 가다듬기 위해 도예를 시작했죠. 삶에서는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잘해야 하는 게 있다면,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는 것도 있어야 하죠. 늘 잘해야만 하는 공연 말고, 아무렇게나 막해도 즐거울 수 있는 게 뭘까. 생각 끝에 찾게 된 게 도예와 요리예요.”
“예쁜 것과 잘하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한다면”이라는 질문엔 거침없이 “둘다 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핑클 때 좋은 곡들 많았는데 노래를 너무 못했어요. 제가 그 중에서 조금 더 잘 했을 뿐, 지금 들어보면 너무 못했죠. 지금은 ‘용’ 된거에요. 외모도 노래도. 그런데 다음 작품은 예쁜 거랑은 상관없네요.”
핑클 멤버였던 효리에 이어 이진도 짝을 찾았지만, 옥주현은 아직 연애보다 일이 우선이다. 그 나이쯤 되는 여자들이 그렇듯 “나이를 먹으니 결혼에 대한 환상도 사라지는 것 같다”고. “아직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 이걸로도 너무 바쁘다”며 “일과 연애중”이라는 식상하고도 무서운(!) 대답을 내놓는다.
제 아무리 옥주현이지만, 언제까지나 이 업계 여왕으로 군림할 순 없는 노릇. 기존의 뮤지컬 여배우들 뿐만 아니라 외모에 실력되는 아이돌 출신 배우들까지 속속 뮤지컬 시장에 발을 내밀며 정상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정작 “아이돌 출신들이 뮤지컬 무대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한다”며 담담해 했다. “해외 팬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많아지면, 무대에 기여하는 바도 커질 것”이라고.
정상의 자리에서 느끼는 불안감 같은 것도 그에겐 아직 없었다. “그 불안감이란게 아직 뭔지 모르겠다”며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쌓아왔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고, 무엇보다도 무대에 오래도록 남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여왕의 자리를 내어 줄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