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 대표 단장으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보내기로 한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우선 모양새가 좋다. 김 위원장은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국가 수반이다. 실제 해외 정상급 인사의 방문이나 국제 무대에서 정부를 대표하는 역할을 해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도 국가 수반 자격으로 참석한 바 있다. 그런 김 위원장을 대표로 내려보낸 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는 26개국의 정상급 인사들과 급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번 대회에 북한이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내려 수 없으니 북한이 꺼낼 수 있는 최선의 카드라 할 만하다. 북한이 예측 가능한 정상적 국가라는 걸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
정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김정일 노동당 위원장 다음의 2∼3인자가 (평창올림픽에) 오면 의미가 더 살 것”이라며 “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고 밝힌바 있다. 그런 점에서 김영남 위원장은 격에 맞는 대화 상대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방남(訪南) 기간 단독으로 만나 회담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이게 잘되면 평창 이후에도 남북 대화 국면을 이어가고, 경우에 따라 북미대화로 확대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의 대화 상대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맞다는 일각의 주장은 의전상 맞지만 이 시점에서 따질 일이 아니다. 김 위원장이 실권이 없는 상징적 수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는 최고 통치자인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을 담고 들어올 게 확실하고 청와대 예방 때 이를 풀어놓을 것이다. 문재인-김영남 회동 성사와 그 결과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안팎 여건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평창올림픽 전날인 8일 대규모 열병식을 갖는다는 입장에 아직도 변함이 없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에 앞서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는 강경 메시지를 발표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을 늦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설령 올림픽 외교무대에서 김 위원장과 펜스 부통령이 만나더라도 상황이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공을 들이는 데는 국제적 고립상태를 벗어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렇다면 대표로 내려오는 김 위원장 보따리에 최소한 핵과 미사일 ‘도발 중단’이란 카드가 들어있어야 한다. 그게 전제되지 않으면 남북대화도 북미대화도 의미를 갖기 어렵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은 평화공세는 공허한 메아리만 남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