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정조대왕의 집권 시절인 1791년, 대기근이 닥쳤다. 한양에는 먹을 쌀이 모자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백성들의 불만은 거세졌고,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쌀 가격을 통제해 달라는 상소가 빗발쳤다. 정조는 폭리를 취하는 상인을 엄벌에 처하라는 교지를 내리려 했다. 연암 박지원은 그러나 이를 만류했다. 쌀값 폭등 소식을 들은 상인들이 한양으로 집결하고 있는데 이를 처벌하면 상인들의 걸음이 끊어져, 굶어죽는 백성을 살리지 못하게 된다며. 왕은 연암의 말을 따랐다. 쌀이 한양으로 모이게 되자 공급이 크게 늘었을 뿐 아니라 상인들간 경쟁으로 쌀값이 하락하면서 민생은 안정을 찾았다.
정치인의 가격 직접 통제 유혹은 200여년전 연암이 쌀값에 개입하려던 정조를 말리던 시절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민의 주거안정을 해치는 원흉인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분양가 상한제’를 입법예고한지 2주가 지났다. 그러나 시장은 김 장관의 선한 의도와는 딴판으로 가고 있다. 정부는 “새 아파트 분양가가 20~30% 낮아질 테니 기다려보라”는 사인을 보냈지만 시장은 재개발·재건축 위축으로 새 아파트 씨가 마를 것으로 해석한다. 이에따라 신축 또는 입주를 앞둔 단지로 발걸음을 재촉했고 이들 아파트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연암이 지금 문 대통령 곁에 있었다면 “가격 규제는 하책이니 공급과 경쟁 원리로 집값 안정을 도모하심이 옳사옵니다” 하는 상소를 올렸을 듯 싶다. 가격규제에 앞서 높은 분양가격이 시장에서 왜 먹히는 지부터 고민했다면 처방도 달랐을 것이다. 정부가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집중하지 않고 서울 외곽으로 수요를 분산하려 하는 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강남이 좋습니까?”했던 김현미 장관의 반문은 서울 수요층의 견고함을 과소평가하고있음을 말해준다.
서울 수요를 읽으려면 먼저 도시 가구 구성의 트렌드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에는 외벌이-다자녀가구가 많았지만 2010년대에는 맞벌이-외자녀가 대세가 됐다. 구매력을 갖춘 고소득·전문직 맞벌이들은 직주근접 환경을 찾는다. 이른바 도심선호 현상이 강해지는 뉴어버니즘(new urbanism)이다. 1인 가구는 물론 은퇴자도 요즘은 도시로 돌아온다. 도심에서 창의적인 주택공급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 도심내 주택공급을 늘리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재건축을 투기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이분법적 사고다. 수요를 충당할 주택공급원으로 보고 선순환시켜야 한다. 도심지역에 빈 땅이 없는 현실에서 역세권의 스마트한 고밀도 개발은 도시의 경쟁력 제고, 주택 공급 증가로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된다.
고밀화 개발에 대한 편견도 걷어내야 한다. 테헤란로의 빌딩은 대게 20층 안팎이다. 30여년 전의 도시계획이지만 지금은 인근 한국전력 부지에 100층을 올리는 시대다. 특정 용도지역에서도 주거·업무·상업시설이 혼재된 복합개발이 필요하다. 용산 코레일 부지, 성수동 강변부지 등 강북에 이런 고밀주거지를 들이면 강남 대체주거지로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토지 소유자의 과도한 이익은 개발 부담금, 보유세 등으로 환수해 공공주택 재원으로 활용하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