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견우와 직녀 설화를 소재로 분단 극복과 통일 염원을 절절하게 그린 문병란 시인의 시 ‘직녀에게’ 시구이자 가수 김원중의 동명의 노래로 잘 알려진 구절이다. 이 구절은 최근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인영 후보자의 입을 통해 새삼 회자되고 있다.
이 후보자는 청와대 인사 발표 직후 국회에서 “평화로 가는 오작교를 다시 만들 수 없어도 노둣돌 하나만은 착실히 놓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밝혔고, 다시 남북회담본부로 첫 출근하는 길에 “언젠가는 남과 북이 평화와 통일로 가는 오작교를 만들어야겠지만 제가 끝까지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노둣돌을 놓겠다”고 말했다.
남북이 갈린 세월이 75년이나 됐고 임기는 한정된 만큼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 포석을 놓는 데 치중하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 보류로 숨을 고르고는 있지만 남북관계가 여전히 불안정하고, 당분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전으로 복구는 어렵다는 현실인식도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1987년 초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을 맡아 6월항쟁을 이끌고 이듬해부터 폭발적으로 터진 통일운동에 기여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국회 인사청문회 ‘의원불패’신화에다 야권의 화력도 주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를 겨누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후보자는 조만간 제41대 통일부 장관에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가 직녀를 만나려는 견우의 심정으로 노둣돌을 놓기 전 풀어야할 과제는 또 있다.
당장 통일부가 상처투성이다. 남북관계 주무부처라는 당위적 역할이 무색할 정도로 존재감을 상실한 상태다. 노무현 정부 이후 두 차례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폐지론에 휩싸이는가 하면, 이전 정권의 뜻에 따라 성실하게 근무한 인사들은 ‘적폐’의 굴레를 쓰고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물러났다. 현 정부 들어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기 외교안보라인 체제에서 통일부가 소외됐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여권에서조차 통일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이 후보자의 전임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조명균 전 장관은 직원들에게 보낸 자필 이임사에서 “정부 내 통일부 위상도 직원 여러분의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고 토로했다. 최근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연철 전 장관은 통일부 직원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안타까웠다면서 “주어진 권한에 비해 짊어져야 하는 짐은 너무나 무거웠다”고 했다.
이 후보자를 바라보는 통일부 내 시각은 기대와 근심이 엇갈리는 듯하다. 4선의 여당 원내대표를 지낸 중량감 있는 장관에 대한 기대와 가뜩이나 통일부 비판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외부 인사가 오는 데에 대한 근심이다. 기대는 충족하고 근심은 풀어야 노둣돌도 놓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