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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일간의 세계여행] 142. 프라하, 온종일 중세의 도시를 쏘다니다
라이프| 2017-03-17 09:32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바츨라프광장(Vaclav Namesti)은 은행이나 까페, 호텔, 각종 매장, 그리고 프라하의 명물인 클럽까지 모여 있는 현대적인 광장이다. 실패했던 1968년 “프라하의 봄”이나 성공해서 민주화를 이뤄낸 1989년 “벨벳혁명” 모두 이 광장을 중심으로 시위가 행해지고 자유를 향한 구호를 외쳤다니, 체코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락을 차지하는 광장이다. 숙소가 여기서 가까워 프라하 도착한 첫날 맥도날드를 찾아가던 길이 바로 이곳이다.

기나긴 광장의 끝은 리모델링으로 문을 닫은 국립박물관이다. 신시가라고 해도 고층빌딩 숲이 아닌 아름다운 건물들의 조화가 참 보기 좋다. 숙소와 가까운 이곳으로 온 것은 내일 체스키크롬로프(Cesky Krumlov)에 갈 버스표를 예매하기 위해서다. 메트로를 타고 매표소가 있는 안델(Andel)역으로 간다. 역 지하의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고 지상으로 나가 내일 아침 출발할 버스터미널까지 확인해 두고 구시가로 돌아온다.   



어젯밤 흥청거리던 광장은 어느새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매시 정각이 가까워 오면 구시청사의 시계탑 앞에는 잠깐 동안의 시계의 움직임을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쌀쌀한 밤이든 아침이든 햇볕 따가운 한낮이든 어딘가에서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와 구시청사 앞은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해골모양의 인형이 줄을 당기면 시계 위 작은 창 두개가 열리면서 예수님과 12사도가 지나가고 남은 세 개의 인형들이 움직이고 수탉이 홰를 치는 것으로 끝난다. 여행 중에 정시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아 로레타 성당의 종소리도 못듣고 근위병 교대식도 못보고 지나쳤지만 구시가의 광장에는 계속 들락거리다 보니 이 시계탑의 퍼포먼스는 자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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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매장들과 아름다운 거리를 인파에 휩쓸려 걷는다. 매일이 축제일 것 같은 프라하 구시가지만 오늘이 토요일이라 특히 사람이 많다. 어제는 트램을 타고 프라하성에 올랐으니 오늘은 프라하의 봄을 만끽하며 카를 다리(Karlův most)를 건너갈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도시는 천천히 걸으며 음미하는 게 맞다. 다리 가까이는 관광객도 더 많고 유람선을 타라고 호객하는 마린룩의 남자들이 귀찮을 지경이다. 맑은 날씨에 강 건너 프라하성이 선명히 보인다. 고층의 빌딩이나 아파트가 시야를 가리지 않으니 아름다운 프라하에서는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한 폭의 그림이다. 



​카를다리의 양쪽에는 탑이 있다. 전망이 좋다는 구시가 쪽 탑으로 오른다. 천천히 계단을 오르니 탑 중간에 표를 파는 직원이 덩그러니 앉아 있다. 표를 사들고 그의 손짓대로 위로 오른다.

과연 듣던 대로다. 유유자적 흐르는 블타바(Vltava)강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 강을 가로지르는 카를다리, 그 양 옆에 세워진 30개의 성상들, 다리를 메운 사람들, 멀리 프라하성까지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방금 걸어온 구시가부터 이어지는 골목도 바로 내려다보인다. 지금은 국립도서관으로 쓰인다는 클레멘티눔(Klementinum)이라는 건물과 작은 광장이 바로 내려다보인다. 보는 위치가 달라지니 같은 풍경도 달리 보인다. 올려다보는 것은 저기 무엇이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은 무엇이든 훤히 보이니 특별한 존재가 된 기분이다. ​

카를교와는 달리 차량이 다니는 다른 다리까지 조망된다. 다리를 건너는 수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탑 꼭대기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두어 명의 사람들이 올라와 풍경을 보다가 내려간다. 그림 같은 프라하 풍경을 거의 혼자 고요하게 즐긴다. 따뜻한 햇살과 알맞게 서늘한 바람이 풍경과 잘 어울린다. 



탑에서 내려와 카를다리를 걷는다. 양 옆의 성상들은 체코의 수호성인들이라고 한다. 몇 걸음을 걷고 나면 나타나는 십자가 아래의 성상들이 이 다리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보이게 하는데 일조한다. 여행자들은 걷다가 그 조각상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고 강을 바라본다. 어느 도시에서보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냥 보고만 있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 자꾸 셔터를 누르게 한다.

글자그대로 ‘핸드메이드’인 프라하 풍경을 담은 그림이나 악세사리를 팔고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도 많다. 카를다리는 그 자체로도 600년이나 된 예술품이지만 동시에 예술가들의 전시장이기도 하고 연주회장이기도 하다.

600여년의 역사와 그 견고함을 자랑하는 다리는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해도 블타바강의 하나뿐인 다리였다고 한다. 프라하궁과 구시가를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가 얼마나 커다란 역할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프라하가 아름다운 것은 이 모든 도시의 풍경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리를 빠져나와 이어진 길을 걷는다. 지리를 잘 몰라도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가다 보니 작은 광장이 나온다. 카를다리의 성상들과 비슷한 조각으로 정교한 무언가를 상징하는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여행자는 장남이 되어 코끼리를 더듬고 지나갈 뿐, 거리마다 숨어있는 역사를 만나려면 프라하 여행은 며칠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뒤로 프라하성의 성 비투스 대성당의 첨탑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아름다운 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즐겁다. 프라하성으로 이어지는 네루도바거리를 구경하며 걷는다. 모든 거리가 중세 건축물의 전시장 같다. 외로운 발걸음이지만 식당에 들어가 점심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서 베어물고 천천히 걷는다. 이런 발걸음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오르막길을 따라 걷다보니 흐라트차니광장이 서서히 보인다. 어제 바츨라프광장 근처에서 트램을 타고 올라와서 보지 못하던 풍경을 하나하나 보고 왔다. 언덕에는 프라하의 경치를 마음껏 내다보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주말이기도 하고 걸어 올라야 하는 이 길에는 놀러 나온 현지인들도 많아 보인다.



체코 초대대통령 동상 앞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에 올라 프라하 시내만 내려다보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 왔던 어제는 사진만 찍고 프라하성으로 가기 바빠서 보지 못하던 풍경이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 한 번 다녀왔다고 해서 그 풍경을 다 본 게 아니다. 계절마다 다를 것이고 하루 중 어느 시점에 방문했느냐에 따라 감상도 달라지니까 말이다.

구름이 많던 어제보다 훨씬 화창한 오늘은 프라하성은 더 아름답다. 어제는 앳된 근위병이 서 있어 상큼했는데 오늘 서 있는 두 사람은 배도 나오고 나이도 있어 보이는 것도 재미있다. 프라하성은 어제 둘러보았으니 티켓을 사지는 않고 한번 건물 외부를 둘러보고 나온다. 어제는 입장만으로도 흥분해서 몰랐는데, 오늘 와서 생각해보니 황금소로 같은 조그만 골목에 돈을 내야만 들어가야 하는 구조는 씁쓸하긴 하다.

​​걸어서 카를다리를 건너 네루도바거리를 지나 프라하성을 둘러보고 다시 내려오니  시간이 많이 지나고 있다. 고즈넉한 도시의 돌바닥길에는 트램이 다닌다. 타보면 별 것도 아닌데 어디서든 트램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꼭 쳐다보게 된다. 자동차가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구시가의 트램은 옛 도시의 풍경을 완성키는 제대로 된 소품이다. 



어쩌면 예전 그대로의 건물과 그대로의 길이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부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트램과 자동차와 사람들이 관통하는 건물이란 게 말이나 되나 싶어진다. 어쩌면 신호등은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 자동차도 트램도 사람도 천천히 자연스럽게 갈 길을 간다. 

구시가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서는 카를다리를 거치지 않고 일부러 차가 지나가는 그 다음 다리를 건너 구시가와 카를 다리풍경을 바라본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풍경 속에는 그동안 미처 못 본 프라하의 구시가나 중심가가 아닌 일상의 풍경도 만날 수 있다.

다시 돌아온 구시가의 얀후스동상 앞에서는 진짜 집시처럼 보이는 노인이 처음 보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버스킹을 하면서 CD를 파는 음악가들이야 카를다리건 구시가의 광장이건 많지만 특이한 음색의 구슬픈 음악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구시가 광장의 아름다운 랜드마크 틴성당 뒤쪽 골목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운겔트(Ungelt)라는 곳으로 구시가의 광장에서도 가잘 오래된 지역이다.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광장 옆 골목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갑자기 흐르는 정적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오후의 운겔트, 독특한 물건들을 파는 작은 가게안에는 주인은 있고 손님은 별로 없다. 들어가서 이것저것 한참을 쳐다보다가 다시 오겠다고 나와도 아무렇지도 않다. 카를다리의 노점이 장사가 더 잘될 것 같다.

정적이 흐르는 운겔트는 이곳이 세계적인 관광도시 프라하의 구시가라는 게 잊힐 만큼 고요하다. 온종일 달콤한 청량음료를 빨대로 마시다가 시원한 샘물을 만나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 같이 상쾌하다. 프라하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된 것은 사실이지만 화려한 거리 이면 뒷골목의 나른한 오후도 프라하가 좋은 또 한 가지 이유가 된다.



오후 4시가 되기 전, 운겔트를 벗어나 광장의 시계탑 앞으로 나간다. 어제 길을 알려주다가 만나 저녁까지 얻어먹었던 오언니와 약속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만일 일정이 바뀌거나 해서 그녀가 오지 않는다면 그냥 일어나도 무방하다. 여행지에서의 즉흥적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아도 거리낌은 없다. 시계탑 퍼포먼스 보고 10분쯤 구시청시 앞에 앉아 있으니 다행히 오언니가 온다. 안와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광장 저편에서 손 흔들며 다가오는 그녀가 반갑긴 하다.

어제 도착해 아직 프라하를 잘 모른다는 오언니를, 그제 도착해 여기저기 쏘다녀 지리를 알고 있는 내가 안내한다. 구시가 근처의 기념품 매장들을 돌아 어제 이미 보아둔 노천시장인 하벨시장(Havelska)으로 간다. 

박수만 치면 괴기스런 소리를 내는 마녀인형의 아우성이 호객을 한다. 각종 전통 인형과 장난감, 냉장고 자석이나 손톱깍이, 엽서, 프라하를 그린 그림과 다양한 소품에 과일까지 팔고 있다. 오언니는 프라하가 마지막 여행지라 기념품 쇼핑을 한다. 배낭여행자에게 기념품이란 말 그대로 기념품일 뿐 비싼 물건을 사지는 않지만 하벨시장의 물건들은 싸기도 하고 볼 것도 많다.



쇼핑을 마치고 하벨시장 옆 아케이드의 현지인 식당에 들어간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광장의 비싼 식당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인데 이곳은 아쉽게도 문을 닫는 중이라 주문을 받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아케이드 내부를 둘러보니 가운데에 말 그대로 바(Bar)가 있다. 은발머리의 예쁜 언니가 서서 단지 생맥주만을 주문받아 그 자리에서 따라준다. 가만히 보니 안주는 바로 옆 작은 편의점에서 사서 먹어도 되는 분위기다.



​이상하게 격식 차린 레스토랑의 최고의 메뉴보다 이런 현지인 분위기의 식당이 더 좋은 나는 오언니와 눈길을 교환한다. 오언니가 재빨리 편의점에서 안줏거리를 사오고 나는 맥주 두 잔을 주문하다. 아름다운 프라하에 어울리는 구시가 광장의 레스토랑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비싼 맥주가 여기서는 싸기도 하고 맛있기도 하다. 여행의 이야기로 한창 즐거운데 은발의 웨이트리스가 주문도 안한 맥주 두 잔을 건네며 빙긋 웃는다. 어떤 남자 하나가 우리에게 맥주를 주문해준 것이다. 이 건물의 지배인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토니는 체코인도 아닌 불가리아사람이다. 검은 머리 동양인 여자 둘이 관광지의 외진 바에 앉아 있는 게 신기했던 것이다. 고국엔 사춘기의 아들이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외로움을 하소연하기도 하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 젊은 일본인 부인을 두고 있다는 사장의 흉을 보기도 한다. 그와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프라하의 작은 바에서 만난 불가리아인이 이 건물의 지배인이라는 걸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믿지 않을 이유도 별로 없다.



맥주 두 잔과 안주용 과자를 놓고 두 시간쯤 이야기해도 바의 웨이트리스는 예쁘게 웃을 뿐이다. 토니와 메일주소를 교환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니 해 넘어간 광장에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우산이 없는 여행자들에게 그냥 비를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오언니를 숙소로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에는 이미 어둠이 깔려있다. 빗방울이 떨어지지만 옷이 많이 젖지는 않을 정도라서 광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비 내리는 밤의 구시청사의 시계 앞에는 이제 사람이 별로 없다. 아름다운 조명이 낮에 운겔트로 갈 때 들어갔던 틴성당을 밝힌다. 점퍼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바라보는 광장의 조명이 따스하다. 아무리 봐도 프라하만큼 “아름답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도시는 흔하지 않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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