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하정우·감독 약속
‘겨털’로 여배우 캐스팅 난항
투자자·배급사 거부로 위기
절망·기다림 딛고 흥행돌풍
절망과 기다림의 4년이 지나 결국 ‘대박’이 터졌다. 하정우는 출연료를 3분의 1만 받았고, 모든 여배우가 거부했던 ‘겨드랑이털’ 캐릭터에는 공효진이 선뜻 나서 흥행을 일궜다.
투자자와 배급사가 거들떠보지 않던 프로젝트였다. 감독은 기약 없는 미래에 지쳐 ‘버스’를 갈아타기 직전까지 갔고, 제작자는 아이들을 월세 단칸방에까지 밀어넣는 극한적 상황에 실낱같은 희망마저 포기할 뻔했다. 그렇게 영화 ‘러브픽션’의 성공은 힘겨웠지만 열매는 달콤하고 화려했다.
‘러브 픽션’이 지난달 29일 개봉해 5일 만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며 누적관객 101만명으로 새봄 극장가에 파란을 일으켰다.
‘러브 픽션’의 출발은 지난 2008년. 미쟝센영화제의 뒤풀이에서 처음 만난 전계수 감독은 하정우에게 “당신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한 편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배우는 “물론 좋다”고 했다. 하정우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배우였다. 전 감독 또한 무명신인이었다. 말뿐인 약속이었지만 하정우가 손에 쥐고 “너무 웃겨 자지러졌다”는 시나리오가 사실상 계약서가 됐다. 전계수 감독의 데뷔작을 프로듀싱했던 엄용훈 대표는 이미 제작사 이름까지 ‘삼거리픽처스’라고 정해두고 의기투합한 상황이었다.
이들은 국내 모든 영화사에 수십번씩 시나리오를 돌렸지만 투자하겠다는 말은 없고 이것저것 손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극중 ‘겨드랑이털을 기른 여자’라는 설정 때문에 여배우들은 CF가 안 들어올 거라며 꽁무니를 뺐다. 하정우까지 백방으로 뛰며 캐스팅에 나섰다. 그러다가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공효진에게서 OK를 받았다”고 했다. 4년간의 긴 터널을 뚫고 나오자 하정우는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막강한 스타덤에 올랐고, 공효진이라는 ‘임자’를 만났다. 고전을 거듭하던 삼거리픽처스 엄 대표는 공동제작한 ‘도가니’의 흥행으로 숨통을 열었다. 하정우는 4년 전에 약속했던 출연료를 올리지 않았다. 도원결의가 이뤄낸 전화위복. 유난히 라이프사이클이 짧은 영화계에서 이들은 드물게 긴 호흡과 믿음 하나로 값진 결실을 이뤄낸 것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