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할퀴고 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이른바 먹자골목 일대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17일 저녁 일어난 큰 불로 이 일대 건물 8채와 점포 19곳이 전소됐다. 한 식당에서 시작된 불은 소방차 진입이 어려웠던 데다 가스통과 변압기 등이 연쇄폭발을 일으키며 피해를 더 키웠다.
별다른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나 화재 현장에서 몇 시간이나 불과 전쟁을 치른 소방관계자의 노고는 간 곳 없이 귀중한 삶의 터전은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도심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진 서울 한복판에서 대형 화재가 잦다는 사실이 민망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번 화재는 또 다시 수도 서울의 도심이 화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있는 그대로 들춰냈다. 수 십 년 묵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데다 대부분 음식점으로 인화성에다 폭발성까지 강한 물질이 여느 지역보다 산적한 곳인데도 화재안전 사각지대로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이런 곳이 서울에만도 한두 곳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화재 취약지구는 화재가 발생하면 제때 진압이 영락없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 역시 고가 사다리차가 아무리 목을 빼도 발화지점에 정확히 물을 쏟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진압 시간이 지체될수록 인화물질을 삼킨 불길은 세력을 더 키워 피해는 더 커지고 만다. 이날 화재현장에 나선 65대의 소방차 중 고가 사다리 살수 차량 등 10여대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저 불구경하는 처지에 불과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지난해 화재 발생 시 소방차가 5분 이내 현장에 도착한 건수는 총 2만6119건으로 전체 화재 발생 건수 4만3247건의 60%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 72%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다. 이유는 간단하다. 태생적으로 골목이 좁은 데다 불법 주정차가 날로 급증한 것이 주원인이다. 소방서와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화재 현장이지만 소방차가 진입을 못해 발을 동동 구른 사례는 숱하다.
지난해 10월 역시 종로구 관수동 식당 화재로 17개 점포를 통째로 태우고도 이번에 또 인근 지역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당국은 그 원인을 철저히 가려냄과 동시에 도심에 불이 났다하면 대형사고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낱낱이 파악해 근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명동ㆍ동대문ㆍ남대문ㆍ세운상가 등 내외국인의 발길이 분주한 곳이 늘 걱정이다. 화재감지용 경보장치, 스프링클러, 소화전 등 기본 진화설비라도 시급히 갖춰 귀중한 생명과 재산 보호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