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강원도 회양 출신으로 선린상업학교와 서울상대의 전신인 경성고등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재무부 이재국장과 한국은행 부총재를 거쳐 1957년 부흥부(전 경제기획원) 장관과 59년 재무부 장관 등 주요 경제부처의 수장을 맡아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또한 충주 비료공장과 충주 수력발전소 건설을 주도했고 이승만 전 대통령과 원조당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던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을 대신해 새 정부청사를 지어 건물의 1∼4층은 한국 정부가 쓰고 5∼8층은 미국 측이 쓰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이 이에 반대했다. 이에 고인은 직접 미국을 방문해 “땅 넓이가 충분한 만큼 기왕에 두 나라가 함께 쓰는 청사로 건물 두 개를 짓는 게 어떻겠느냐”고 해결책을 제시했다..그는 1974년 주유럽공동체(EC) 대사(벨기에, 룩셈부르크 대사 겸임) 시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경제외교에 주력했다. 박 전 대통령은 76년 고인을 초대 수출입은행장에 임명했다. 이후 고인은 민간 경제부문에 투신해 동양나이론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국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20여년간 한국능률협회를 이끌었다.
유족으로는 사업가 동진 씨 등 1남 4녀가 있다. 이봉서 단암산업 회장(전 상공부 장관), 고 신명수 전 신동방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주관엽 씨(사업가)가 사위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02-2227-7550)에 마련했으며. 영결식은 25일 오전 6시30분, 발인은 같은 날 오전 7시30분이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