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런던을 찾은 날은 악명 높은 영국 날씨를 실감케 하는 가을이었다. 런던아이(London Eye)의 야경을 눈에 담기에는 칼바람이 지독했다. 옷깃을 여민 채 눈에 보이는 바(Bar)로 무작정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오랫동안 밴 듯한 시가 향이 코 끝에 확 감겼다. 시간의 깊이를 짐작케 하는 향이었다.
과묵한 중년의 바텐더는 칵테일 한 잔을 권했다. 러스티네일. ‘녹슨 못’이라는 뜻으로 이름만큼이나 남성적인 칵테일이다. 스모키한 향을 머금은 스카치 위스키(Scotch whisky)와 벌꿀의 달콤함을 간직한 드람브이(Drambuieㆍ스카치 위스키를 기본주로 꿀을 더해 만든 호박색 리큐르)가 얼음과 만나 황금 빛으로 빛난다. 잔을 비우자 마음이 채워진다.
깊어가는 가을밤, 위스키 한 잔의 낭만을 집에서도 즐기고 싶다면 따라해보자. 잔을 거의 채울 듯 커다란 얼음조각 하나에 위스키를 먼저 붓고, 같은 양의 드람브이를 얼음 위로 흘러내리듯 붓는다. 시나몬 스틱이 있다면 살짝 불에 그을려 곁들이거나 레몬 껍질 부분만 비틀어 곁들여도 좋다.
오랜 친구와 함께 올드 칵테일을 즐기며 만추(晩秋)에 취해보면 어떨까. 뭐 혼자라도 괜찮다. 올드 칵테일이 당신의 친구가 돼 줄 테니까.
<이한나 F&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