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연구개발 사업화(R&BD)를 위해 우리 정부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왔으나 현장의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심지어는 이런 자금은 눈 먼 돈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사업화 지원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과연 사업화단계의 개별과제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는 게 효과적인가? 그리고 공정한가?
혁신의 씨앗을 뿌리는 초기단계에는 시장실패가 발생하기 쉬우므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업화로 연결되는 단계에 정부의 직접 지원은 소위 레몬마켓을 만들 뿐이다. 스스로의 혁신하는 기업보다는 공공기관 주변에서 맴돌며 지원금을 따먹는 기업들이 번성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업화단계의 기본 정책방향은 ‘기술공급(Technology Push)’이 아니라 ‘시장유인(Market Pull)’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기술시장을 포함한 개방혁신 생태계의 형성이 요구된다. 이러한 개방혁신 생태계에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창업가들이 활약하는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적인 연구개발 사업화가 잇따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개별 연구개발과제를 선정하고 개별 기업을 지원해 왔다. 그 선정과정이 공정하고 효율적이라는 평가는 그다지 없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공공 평가기관 직원들은 과도한 업무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고생이 국가혁신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라는 게 불편한 대한민국 연구개발 사업화의 진실이다.
이제 생각을 바꾸자. 개별과제를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과제의 사업화가 쉬워지는 생태계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전환해보자. 직접 지원은 많은 경우 생태계를 파괴하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수많은 기술사업화가 성공하는 이유는 직접지원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업화생태계가 잘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2000년 500만달러에 달했던 실리콘밸리의 창업비용이 2011년 불과 5000달러로 격감했다. 당연히 기술사업화는 쉬워지고 많아졌다. 이를 뒷받침한 것은 단일과제와 기업의 지원이 아니라 개방혁신 생태계였다. 아이디어 플랫폼은 창조성을 연결하고 증폭시켰다. 테크샵과 같은 개발플랫폼은 시제품 제작을 쉽게 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시장 진입비용을 조달해줬다. 오픈소스와 클라우드플랫폼은 사업화비용을 감소시켰다. 그리고 이노센티브와 나인시그마와 같은 개방기술 플랫폼은 기술시장을 형성했다. 문제는 플랫폼과 생태계인 것이다.
이러한 기술사업화 플랫폼과 더불어 개방협력을 촉진하는 제도의 개혁도 뒤따라야 한다. 사업화를 옥죄는 각종 사전규제를 전향적으로 풀어줘야 한다. 작을 때는 유연규제를 하고 커지면 적정규제를 하는 것이 영국과 미국의 규제정책이다. 이런 네거티브규제가 기술사업화의 원칙이 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식옵션 규제를 풀어 협력하는 기업간 혁신의 이익을 공유케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방대한 국가R&D 투자를 실제 성장과 고용으로 연결하는 사업화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