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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동안 세계 경제를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가 신고립주의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다. 글로벌 경제난에 저소득층의 신음소리가 커지면서 기존 경제정책을 수정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현실화된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EU 탈퇴)는 신자유주의 붕괴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국민들은 동유럽과 이슬람에서 밀려드는 이민자들로 인해 일자리와 복지혜택을 잃게 됐다는 불만에 차라리 고립되는 길을 택했다. 수출의 40% 이상을 의존하는 EU를 탈퇴함으로써 얻는 손해가 막심하지만, EU가 보복조로 가할 지도 모를 무역장벽까지 감내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선택이다. 1970년대 신자유주의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고 또 적극 전파했던 영국이, 이제 그것과 반대되는 선택을 가장 먼저 하고 나섰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공교롭게도 영국과 같은 시기 신자유주의 도입에 앞장섰던 미국 역시 방향을 전면 수정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먼저다(America First)’라는 구호를 앞세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그 방향 전환의 선봉에 서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이미 맺은 각종 자유무역협상을 재검토하겠다고 했으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반대 입장이다. 중국산 제품은 높은 관세로, 멕시코 노동자는 높은 장벽으로 막겠다는 그의 약속은 경제난에 자존심을 구긴 백인 저소득층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트럼프와 경쟁을 벌여야 할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역시 트럼프보다는 정도가 덜 하지만, TPP에 반대하는 등 기존 정책 수정 의사를 보이고 있다.
유럽의 극우세력은 신자유주의를 위협하는 핵심 세력이다. 극우 세력은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이념적 기반으로 삼아 세계화와 그로 인해 몰려든 이민자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영국에서 탈퇴 진영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의 힘이 컸다. 프랑스 ‘국민전선’, 덴마크의 ‘인민당’,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이탈리아의 ‘북부리그’ 등은 브렉시트의 승리를 축하하며 자국에서도 국민투표를 추진하겠다고 협박 중이다. 브렉시트는 단순히 영국의 EU 탈퇴가 아니라, EU 해체의 서막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신자유주의를 오랫동안 비판해 온 것은 좌파 진영이었다. 신자유주의는 비교우위론을 신봉한 탓에 열세에 있는 산업 종사자들이 구조조정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도외시했고, 초국적 자본 이동으로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를 촉발시켰으며, 작은 정부론을 신봉한 바람에 빈부 격차를 해소할 복지는 약화시켰다는 것이 좌파 진영에서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들 역시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골수 좌파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인기를 끈 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이 왼쪽에서도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이 커지자 신자유주의의 전위대 역할을 했던 국제통화기금(IMF) 내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IMF 기관지에 실린 “신자유주의: 과잉판매됐나(oversold)?”라는 논문에서 조너선 오스트리 IMF 조사부문 부국장 등 IMF 핵심 경제학자 3명은 이러한 기류를 보여줬다. 그들은 ‘자본 계정의 자유화’와 ‘재정 건전성’이라는 두 가지 신자유주의 어젠다가 불평등을 초래했음을 시인했다. 보고서는 “불평등이 확대되면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며 “신자유주의 어젠다의 주창자들도 소득 분배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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