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303호인 <승정원일기>라는 조선조 거질의 역사문헌에 대해 아시리라. 승정원 주서(정7품)가 매일 왕명 출납, 각종 행정사무를 기록한 일기이다. 인조 대부터 순종 대까지 288년 동안 기록한 글자수가 무려 2억 4000여만자. 단일 사료로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며, 2001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 전기의 기록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지 않았다면 족히 5억자도 넘었으리라. 승정원은 오늘날 청와대 비서실 격의 행정기관. 유일한 필사본으로 모두 2386책에 이른다. 군신간의 대화나 궁궐내 내밀한 이야기 등 워낙 디테일한 기록이 수두룩해 조선조 역사연구의 기초사료이자 역사문화 콘텐츠의 보고일 것은 불문가지. 한국문화경제학회의 2011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전번역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약 586억원에 달하며, 고전번역물 중 국민의 역사고전에 대한 활용도가 71.1%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고전번역원(민족문화추진회의 후신)이 1984년부터 번역을 시작하여 2016년말 현재 499책을 번역, 20.9%의 번역률을 보이고 있다. 현재의 예산지원과 번역인력을 감안하면 완역까지 최소 41년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것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0년부터 17년 동안 초서로 기록된 내용을 해서체로 바꿔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지, 아니었으면 무조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정감사 때마다 승정원일기의 조기번역에 대한 질의가 쏟아지지만, 정부의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 또한 현실이다.
승정원일기의 조기 완역을 위해서는 우선, 예산 확보를 통하여 사업량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20년 내 완역 달성을 위해서는 연간 사업량을 최소 100책(현재 46책) 규모로 늘려야 하는데, 연간 17억여원의 사업예산이 필요하다.
둘째, 사업량을 최소 100책으로 늘리려면 최소 50명의 전문 번역인력 추가 확보가 절대적이다. 연간 1책을 번역하는데 1인의 전문 번역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번역인력 양성 시스템으로는 승정원일기와 같은 국가의 거대 기록물 번역을 위한 전문 인력을 단시일 내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대안은 <승정원일기>만을 떼놓고 볼 때, 한문문리 습득자와 역사학 전공자를 대상으로 특화된 단기연수를 통해 <승정원일기> 번역, 교감, 표점, 편집, 교정 등에 특화된 실무전문가를 집중 양성하는 것이다. 승정원일기 번역에 특화된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특화된 단기연수가 필요한 까닭은 시대별 전문용어투성이가 많고 조선시대 역사와 제도에 해박해지 않으면 숙련번역가도 번역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여명을 뽑아 수업연한은 1년으로 하고 국가에서 전액 지원하면 꽉 막힌 듯한 번역인력 확보 ‘전선’에 조금은 활로가 트이지 않을까. 갈수록 늘어나는 학계와 대중의 고전에 대한 수요 및 저변 확대에 부응하고 역사문화콘텐츠 개발을 통한 ‘한류 수출’ 등 문화산업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방법은 이것뿐인 듯하다. 또한 우리 자녀와 손자세대들이 우리 역사의 속살을 우리글로 마음놓고 읽을 수 있지 않겠는가.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계기관의 각별한 관심과 성원이 절실하다.
최영록<한국고전번역원 홍보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