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트레스 커져 감정조절 실패
식욕 촉진하는 뇌회로 활성화
재택 늘며 바뀐 생활환경 영향
수면패턴 깨지고 저녁 더 섭취
심하면 음식중독 이어질 수도
다이어트-스트레스 폭식 유발
내탓 말고 마음의 원인 찾아야
유은정 서초좋은의원 원장. 유 원장은 “식탐을 일으키는 자신의 감정을 먼저 파악하고 해결해야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살이 찐 것은 모두 내 탓이 아닙니다. ‘뇌 탓’이 커요.”
다이어트를 하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한 위로의 말이 있을까. 매번 다짐하면서도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다이어트 법칙이다. “또 왜 그랬을까” 자책하며 시름시름 앓아가는 것도 다이어트 일상이다. 하지만 정신과전문의인 유은정 서초좋은의원 원장은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보다 뇌를 통한 감정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칼로리만 따질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부터 챙겨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스트레스가 커진 상황에서는 “감정 조절의 실패로 식탐과 음식중독이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뇌 탓으로 인한 식탐” 마음의 원인 찾아야=“대학병원 인턴 시절 스트레스로 8㎏이 늘었어요. 하지만 인턴이 끝나고 정신과에서 수련을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살이 빠지더군요.”
환자 사례가 아닌 유은정 원장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경험을 비롯해 우울증 환자들이 체중 증가로 다시 우울해지는 악순환을 지켜보면서 음식과 스트레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01년부터 식이장애와 스트레스를 중점 진료하는 비만클리닉을 시작했으며, 현재 서초좋은의원에서 원장직을 맡고 있다. ‘나는 초콜릿과 이별중이다’ 등의 책 발간이나 방송 출연을 통해서도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 원장은 “다이어트 실패 원인을 의지박약으로 여기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스트레스로 분비되는 코르티솔 호르몬은 식욕을 더욱 촉진한다며 “그 이면에 숨겨진 감정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30대 여성의 경우, 상담을 통해 폭식 유발의 요인이 ‘분노’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외모 관리를 못한다고 지적하는 어머니와의 갈등이 심각했던 것이죠. 이후 음식 앞으로 내몰렸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도록 배우고, 엄마와도 함께 상담을 진행하자 충동적인 폭식이 조절됐습니다.”
▶코로나 스트레스가 식탐 일으켜…=이러한 사례는 최근 ‘코로나 스트레스’를 겪는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 원장은 “식탐은 포만감과는 별개로 작동하는 감정의 문제로, 코로나 위기는 식탐을 추구하는 뇌 회로를 의식·무의식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재택근무 등 코로나가 바꾼 생활환경도 영향을 미친다.
“수면 패턴이 깨져 늦게 일어나면 아침을 거르기 쉬운데, 이럴 경우 식욕촉진호르몬(그렐린)의 수치가 높아집니다. 식욕 조절이 더 어려워지고 상대적으로 저녁을 많이 먹게 되죠. 또한 재택근무시에는 식사 중에도 스마트폰이나 TV를 보게 되지만 이는 포만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유 원장은 식탐이 음식 중독(음식을 끊임없이 원해 과식과 폭식을 자주 하는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며, 특히 식욕을 매번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식탐을 늘린다고 지적했다. 먹고 싶은 것을 계속 참을 경우 음식 섭취를 쾌감으로 인식하는 ‘뇌 보상회로’가 작동해 음식중독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즉 뇌 보상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다.
“음식중독을 보이는 이들은 도파민을 통해 쾌감을 강화하는 뇌영역이 활성화되어 있는데, 이는 코카인처럼 마약중독에 이르는 뇌 상태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특히 뇌 성숙이 덜 진행된 10대부터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음식중독까지 발전하기 쉬워 위험합니다.”
▶‘마음 다이어트’,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다이어트의 시작도 감정을 다스리는 데 있었다. 유 원장이 소개한 방법은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이다. 이는 지금 먹고 있는 음식에 몸과 마음을 집중하는 식사법이다. 음식을 오래 씹으면서 오로지 음식의 맛과 향, 식감, 형태 등에만 집중하면 포만감을 최대한 느낄 수 있다. 또한 식탐이 생길 때에는 친구와 통화하거나 청소기를 돌리는 등 다른 곳에 집중할 거리를 미리 만들어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유 원장은 무엇보다 힘든 감정을 음식으로만 해소하려는 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음식섭취는 감정의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음식중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중될 뿐이라는 얘기다.
“살이 찌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외부 상황도 원인이 됩니다. 자신을 탓하기에 앞서 음식중독의 주범인 ‘뇌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노력해보세요.”
유 원장의 말에는 다이어트 실패로 인한 죄책감과 우울증을 덜어버리는 힘이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처럼 음식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그의 진료철학에도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마음이 힘든 코로나 위기 상황은 분명 나의 뇌와 음식과의 화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육성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