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재계 본산’이란 명예와 상징성에 걸맞지 않게 전경련의 위상은 예전같지 않다. 정부는 상생, 동반성장 등을 이유로 정책 ‘협조’를 압박하고, 국민은 여전히 ‘재벌 총수의 친목모임’쯤으로 여긴다.
허 회장이 취임사에서 “기적의 50년을 넘어 희망의 100년으로 가는 길을 열겠다”면서 ‘국민과 함께하는 전경련’을 모토로 제시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사회적 책임, 윤리경영, 노블레스 오블리주, 나눔과 배려’에 힘써달라는 조석래 전 회장의 당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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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를 부인하기 어렵다. 일부 오너마저 특정 대기업 이익만 챙긴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중소기업과 일반 서민은 ‘가진 자 집단’으로 폄하한다. 상공인의 법정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노동계 카운터파트인 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과 무역업계를 대변하는 중소기업중앙회ㆍ무역협회와 달리 그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허창수호(號) 전경련’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는 이유다. 대내외 환경은 지금 제도 개선, 규제 철폐 차원의 기업 이익을 넘어 국가경제 운용전략을 제시하는 민간 주도 싱크탱크로 거듭날 것을 요구한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처럼 정치ㆍ외교ㆍ국방ㆍ교육ㆍ환경ㆍ과학ㆍ저출산 고령화ㆍ양극화 등 전방위에 걸쳐 국가와 국민의 생각의 틀을 선진화하는 초석을 다지라는 것이다.
이는 전경련 회장 소속 기업에 쏠리는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면서 국민에게 다가가는 첩경이기도 하다. 기업환경 개선은 개별 대기업 연구소에 맡겨두면 된다. 요즘 같은 때 보육ㆍ급식ㆍ의료에 이어 반값 등록금ㆍ주택ㆍ일자리로 확산되는 보편적 무상복지 주장에 맞서 선택적 복지를 설파하고, ‘재스민 혁명’에 따른 바람직한 대북정책 방향 등을 제시하는 싱크탱크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허 회장은 전경련을 정치적 이념집단에서 순수한 정책집단으로 방향을 트는 조타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으로 믿는다.
정당한 부(富)의 승계 분위기 확산 또한 허 회장의 과제다. 우리나라 부자가 저평가받는 것은 부의 변칙 대물림에서 비롯한다. 이제는 상속ㆍ증여에 합당한 세금을 제대로 내고 경영능력이 검증된 후계자가 기업을 물려받을 때가 됐다.
전경련 회원사부터 탈법 상속과 탈세, 재산 해외 도피, 비자금 조성, 사생활 문란 등에서 자유로워져야 건강한 자본주의와 창의적인 시장경제,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 구현을 앞당길 수 있다. 대기업 총수가 대부분 창업 2, 3세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부의 사회 환원도 좀더 당당해져야 한다. 연말이나 재해 발생 때마다 대기업이 내는 거액의 불우이웃돕기 성금에 국민은 더 이상 감동하지 않는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등 미국의 억만장자같이 개인 재산 절반을 내놓는 통 큰(?) 사회 환원은 아닐지라도, 회장님 개인 명의의 ‘진정한’ 기부를 보고 싶은 것이다. 노점상 할머니까지 평생 모은 수천만원을 기부금으로 선뜻 내놓는 판에 전경련의 성금 모금 교통정리(?)를 했으면 한다.
쉽지 않은 과제이나 허 회장이 더욱 몸을 낮추고 국민을 품는다면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 ‘전경련 회장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전경련은 역할을 잘 하고 있으며 그 위상이 낮아졌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전경련 내부 다짐이 유효하려면 뼈를 깎는 자기혁신이 선결이다. 앙샹 레짐에서 벗어나야 전경련이 산다. yessta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