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에 대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김현웅(이하 김):뮤지컬 명성황후를 보고 뮤지컬 배우를 꿈꿨어요. 뮤지컬 배우를 위해서는 춤과 노래, 연기를 다 잘해야 하니 춤부터 시작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런데 발레 학원을 다니면서 발레 공연 비디오를 보고 반해버렸어요. 고3이니 늦게 시작한 편이죠.
배민순(이하 배): 백댄서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춤을 하려면 기본부터 하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발레를 시작하게 된 것이 중 3 때였어요. 발레를 하지 않았다면 백댄서로 활약했겠죠.
윤전일(이하 윤): 지금도 늦지 않았어. 저는 가수가 되려고 예고로 진학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발레를 시작했어요. 소름끼칠 정도로 노래를 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원래 가수로 무대 서는 게 꿈이었거든요.
김: 니가 노래를 부르면 소름이 돋긴 해.
이동훈(이하 이): 비보이 춤에 빠져있던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무용을 전공한 체육선생님이 ‘제대로 된 춤’ 한번 배워보라고 해서 발레를 처음 만났죠. 그런데 아무래도 일찍 시작하면 기본기가 탄탄하고 굳기 전의 몸이니 더 유연하겠죠.
김: 하지만 저는 가끔 생각해요. 더 일찍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너무 힘들어서 벌써 관뒀을 것 같기도 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요.
-발레리노가 되려면 타고 나야 하는 신체 조건이 있나요.
이: 발레리노의 이상적인 체형은 현웅이 형 사진을 찍어 놓으면 되요. 우선 기본적으로 팔 다리가 길어야 하고 작은 얼굴로 태어나야 하죠. 베이글에 가려질 정도 크기의 얼굴이요. 튀어나온 발등에 넓은 어깨, 그리고 유연해야 해요. 터닝 감각과 점프력까지. 그리고 하나 더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김: 얼굴도 잘 생겨야 해요. 저 보시면 알겠죠?
배: 냉정하게 말해서 타고 나야 하는 부분이 크죠. 저도 키가 180cm만 되면 좋을 텐데.
이: 저는 긴다리와 유연한 발이 아쉬워요.
윤: 저 역시 긴다리. 다리만 10센치 더 길면 좋겠어요. 허리 말고요. 그런 것 외에는 철저한 자기관리죠. 발레리나 못지 않게 몸매 관리가 중요하고 체력소모가 크니 스트레칭은 기본이고 매일 유산소 운동도 꾸준히 합니다.
-요즘 인기인 개그콘서트의 ‘발레리no’ 코너는 한번씩은 봤는지요.
이: 처음엔 재밌어서 웃었는데 매번 똑같은 스타일로 가니 조금 짜증나더라고요.
김: 주요 부위를 가린다는 초점을 하나에만 맞춰서 웃기는 거잖아요. 발레리노라는 소재로 다양한 얘기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부분은 아쉬워요. 발레하는 사람들이 타이즈를 입고 무대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여지도 있고요.
배: 발레리노들은 타이즈 안에 서포트라는 것을 착용해요. 여성들의 보정속옷 같은 거죠. 그런데 개그콘서트를 보니 그들은 속옷만 착용하고 흰색 타이즈를 입는 것 같더라고요.
윤: 서포트 없이 연습을 하는 건 공부할 때 연필없이 시작하는 것과 같죠. 저는 고등학교 시험볼 때 처음 입어봤어요. 처음엔 불편하고 갑갑하고 피부가 상하기도 하죠.
김: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서포트의 존재를 까맣게 몰랐어요. 속옷만 입었죠. 고3이면 다 컸는데. 검정색 타이즈만 입어서 다행이죠. 발레학원의 유일한 발레리노여서 원장선생님도 서포트에 신경을 안 썼죠. 한참 후에 종로3가에 직접 가서 사 입었어요. 입어 보고는 식은 땀이 다 나더라고요. 그동안 이걸 착용 안 했다니 싶어서.
이: 처음엔 착용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죠. 지금은 일상복을 입을 때도 없으면 왠지 허전해요.
윤: 혹시라도 연습하는데 서포트를 안 가져왔다면 그날 연습은 못해요. 병가를 내는 한이 있어도.
-직업으로서의 발레리노는 어떤가요.
김: 2004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일찍 자리를 잡은 편이죠. 처음엔 아직 취업을 못한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하기도 했어요. 전문직이기도 하고. 하지만 먼저 시작했을 뿐이지, 발레리노의 수명이 길진 않잖아요.
윤: 하루하루가 경쟁이에요. 발레단 입단부터 매 공연도. 후배들은 끊임없이 올라오고 저는 제 자리를 지켜야 하니까요. 학교 다닐 때부터 계속되는 경쟁. 하지만 무용수에겐 그런 긴장이 없어선 안 되겠죠.
이: 저는 연습이나 무대를 즐기는 공간으로 생각해요. 경쟁은 부담이지만 발레단 입단 후 더 많은 것을 배워서 좋았죠. 캐스팅이 안 되도 객석에서도 간접적으로 배워요. 발레단 입단이 제 능력의 꽃을 피우는 시작점인 것 같아요.
-발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발레리노라고 하면 주변에서 쉽게 하는 오해나 편견도 있지 않나요
배: 발레리노라고 하면 단번에 ‘진짜 쫄쫄이 입냐’고 묻죠.
이: 특히 결혼할 사람을 만나 신부 측 부모님을 만나면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남자가 무슨 춤쟁이냐’ ‘어떻게 먹고 살거냐’ ‘한 가정을 꾸려갈 수 있겠냐’ 질문이 쏟아진대요. 심지어 저는 고등학교 때 게이냐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윤: 그래서 이쪽을 아는 사람들이 대화하기도 편하죠. 제 여자친구도 국립발레단의 발레리나에요.
배: 저도. 아무래도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많고 서로의 일을 잘 이해해주니 가까워지기 쉽죠.
-파트너가 중요하다고 하던데, 상대 발레리나와 호흡 맞출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김: 자세를 잡고 타이밍을 맞추는 것은 반복된 연습으로 맞춰가는 거죠. 경험이 많은 사람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때가 있어요. 엄격하게 선후배를 따지는 곳이니까요.
이:발레리노는 발레리나와 균형을 맞추고 드는 동작이 많잖아요. 그런데 파트너가 몸 관리를 안 하면 스트레스가 엄청나죠. 직접적으로 그만 먹으라고 얘긴 못하고 같이 운동하고 살 빼자고 간접적으로 말하기도 해요.
윤: 몸무게 변화는 서로에게 가장 예민한 부분이죠. 전막을 함께 해야 하는데 드는 장면이 두려워지면 표정관리도 안 되고 정신적인 부담도 커지죠.
이: 조용한 장면에서 자칫 잘못하면 ‘으음’하는 신음소리가 나기도 해요.
-최근 ‘지젤’ 매진뿐 아니라 뮤지컬 ‘빌리엘리어트’에 영화 ‘블랙스완’ 등 다양한 장르에서 발레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무대 밖에서도 인기를 실감하나요.
김: (옆에 있던 국립발레단 직원을 돌아보며)오늘 나한테 소포 온 것 없어요? 한번은 코엑스를 갔는데 ‘발레리노 김현웅씨 맞죠’라며 사인을 부탁하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주변에 사람들이 막 몰려들면서 ‘누구야? 연예인이야?’하며 웅성웅성했어요. 그런데 저를 확인한 후엔 뿔뿔이 흩어졌어요. 결국 처음 사인을 부탁했던 분이랑 저만 덩그러니 남았죠.
이: 저는 동대문에 쇼핑을 하러 갔는데 한 가게 사장님이 알아보시고 고른 옷을 공짜로 주셨어요. 가끔 지하철에서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사인을 청하기도 해요.
배: 멋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발레 대중화가 현실에서 더 발전적으로 진행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배: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공연 실황이 TV를 통해 자주 방영이 되면 좋겠어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인데 발레 콩쿠르도 중계를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이: 기본도 중요해요. 어렸을 때부터 체육 과목에 무용이 별도로 있어야 하고 전공하든 안 하든 모든 학교에 무용실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슈즈가 뭔지 ‘백조의 호수’가 뭔지도 모른 채 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김: 무엇보다 대중에게 다가가려면 탁월한 스타가 있어야죠. 조승우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뮤지컬계의 이슈만 봐도 그래요.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보러와 달라고 호소하기보다 먼저 스타를 키우고 작품을 잘 만들어 관객이 스스로 찾아오게 해야죠.
-국립발레단 무대에 서는 멋진 발레리노들을 보며 발레에 대한 꿈꾸는 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하지마.
배: 뛰지마.
윤: 바에서 손 떼라.
김: 돌지마? 냉정하게 보일지 몰라도 발레는 우선 시각 예술이에요. 기본적인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죠.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해도 즐기지 못하면 오래갈 수 없어요.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각오 없이 뛰어들거나 버텨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나아요. 하지만 선택한 이후 무대에서 느끼는 희열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죠.
윤정현 기자/hit@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