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이면 작은 골목길 담장 너머에서 진하게 퍼지던 라일락의 진한 향기가 한강공원에서도 흐른다.
라일락. 우리말 이름으론 수수꽃다리. 화려하진 않지만 순박하고 예쁜 이름 수수꽃다리. 이 땅에도 자생하고 있었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다가 일제강점기 말 미국에서 ‘미스김라일락’이라는 종으로 바뀌어 다시 돌아왔고 라일락이란 이름을 알려나갔다. 수수꽃다리는 왠지 한강과 닮아 있다.
경제개발과 도시화의 숨가쁜 시대가 이어지던 60년대 이후, 이 땅은 한강의 기적으로 칭송받는 압축성장을 거듭해왔다. 빠른 도시화 과정에서 서울은 1989년에 천만 시민이 모여 사는 거대도시가 됐고, 한강은 급속히 늘어나는 서울 인구에 따른 주택과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간으로 쓰였다. 한강 양쪽으론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등 도시고속도로가 자리 잡고, 강 너머에는 성냥갑 아파트가 병풍처럼 들어섰다. 서민 삶의 애환과 기쁨을 나누던 동반자로서의 한강은 잊혀지고, 홍수 때마다 넘쳐나는 강물을 막아내야만 하는 방어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순박한 우리의 역사였던 수수꽃다리를 기억해낸 것처럼, 21세기에 들어와 한강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중세 유럽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찬란한 문화를 살려내자는 문예부흥운동이 펼쳐진 것처럼, 한강에 잃어버린 자연과 역사, 문화를 살려내자는 것이 바로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한강르네상스의 철학이다.
한강은 지금 초록빛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다. 생태계와 사람이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41.5㎞ 물길 따라 꽃과 나무를 심는 생태공원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홍수를 막기 위해 쌓아올린 콘크리트를 없애고 호안을 자연석과 갯버들이 어우러진 자연형 강가로 바꾸어 사람이 물과 만날 수 있게 하고 있다. 자연형 강안을 따라 물고기에게 먹이와 수초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살려내고, 이들을 먹이 삼아 철새와 텃새가 살아갈 수 있도록 갈대와 물억새를 심고 있다.
지금 한강공원 곳곳에서는 꽃과 나무를 심고 있다. 그냥 나무가 아니라 이제는 향기가 나는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향기가 진한 라일락을 곳곳에 심어 한강에 향기가 흐르게 하고 있다. 올봄 한강공원에는 이미 4만주가 넘는 향기나무가 심어졌다. 수수꽃다리 꽃이 피어나고 있다. 뚝섬한강공원 자벌레 아래, 반포한강공원 달빛광장, 여의도한강공원 원효대교~서강대교, 난지한강공원 자전거공원 주변에서 보라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라일락 향기에 취할 수 있다.
이제 한강은 서울시민이 아끼고 즐기는 공간으로, 아름다운 꽃과 초록의 나무, 물고기와 새가 함께 사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