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디스크 환자들에게 언제부터 허리가 아팠냐고 하면 대부분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나니 허리가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다” 혹은 “허리를 삐끗했는데 그 뒤로 계속 아프다”라고 대답하기 일쑤다. 과연 말처럼 허리디스크라는 질병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길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감기처럼 누구에게나 흔하게 찾아오는 질병도 으슬으슬 몸이 춥거나 목소리가 가라앉는 등 전조증상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사고에 의한 허리디스크가 아닌 이상 척추질환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어온 생활습관병이기 때문에 환자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 전조증상은 반드시 존재한다.
척추전문 자생한방병원이 척추질환으로 입원 중인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전조증상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가장 먼저 보인 생활 속 첫 증상으로 ‘장시간 서 있거나 앉아있을 때 허리가 아팠다’는 응답(61%)이 가장 많이 나왔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환자들은 첫 증상을 무시하다가 좀더 심각한 증상이 왔을 때 병원을 찾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원하게 된 결정적인 증상은 ‘다리에서 발쪽으로 저리거나 당긴다’(40%)처럼 통증을 넘어 신경이상 증상이 나타났을 때야 비로소 병원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결과는 단순 통증은 무시하는 이른바 ‘통증불감증’에서 비롯된다. 몸은 스스로 회복하려는 힘, 즉 자생력이 있어서 이상이 생기면 통증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통증은 인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위험 상황을 경고하는 일종의 방어수단인 것이다. 어떠한 조치 없이 이런 상황을 방치한다면 당연히 통증은 더욱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치료를 미룬 이유에 대해서는 무려 50%가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다고 답해 통증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자생한방병원 척추디스크센터 김정철 원장은 “허리통증은 단순히 허리 주변 근육의 긴장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통증이 만성적으로 나타날 경우에는 디스크 주변을 지지하는 근육과 인대가 약해져 나타나는 디스크 초기 증상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정철 원장은 “이러한 전조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허리 주변에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는 침치료나 근육과 인대를 강화하는 운동으로 증상을 없앨 수 있지만 다리에서 발쪽으로 저리고 당기는 증상은 이미 전조증상을 지난 디스크 증상이기 때문에 치료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초 증상 후 치료를 미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리 통증은 사람이 살면서 90% 이상은 경험한다고 할 만큼 흔한 통증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치료를 미룬 이유로는 ‘이러다말겠지’라고 생각해서(50%), 통증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25%), 처음에는 진통제만 먹어도 나아서(8%) 순으로 나타나, 결국 통증에 대한 불감증이 척추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다가 병을 키우고 있음을 입증했다.
한편 척추질환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첫 증상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척추질환인 허리디스크, 척추관협착증, 퇴행성디스크의 경우 전조증상 1위와 2위가 ‘장시간 같은 자세를 취할 때 허리가 아프다’와 ‘갑자기 자세를 바꿀 때 허리가 아프다’로 동일하게 나타났다.
이는 허리디스크와 척추관협착증은 튀어나온 디스크와 좁아진 척추관 때문에 척추신경이 눌려 다리가 저리고 당기는 증상이 주로 나타나게 되는 반면 퇴행성디스크의 경우는 수분이 빠져나가 퇴행된 디스크가 외부 충격에 대한 완충 작용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자세를 바꾸면 통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 주요 증상은 척추관협착증의 경우 오래 걷기 힘들다는 것인데, 이는 척추관이 좁아져서 신경이 압박될 뿐만 아니라 하지의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아서 걸으면 걸을수록 통증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퇴행성디스크는 수분이 빠져 퇴행된 디스크가 완충작용을 못하면서 후관절이라는 척추뼈에 무리가 가게 되어 엉덩이가 시리고 아플 수 있다.
김정철 원장은 “허리와 다리에 통증이 있으면 흔히 허리디스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증상이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질환은 아니다. 질환에 따라 치료 방향과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처음 나타난 증상만 가지고 스스로 질병을 판단한다면 치료를 그르칠 수 있다. 일단 척추질환이 의심되는 전조증상이 만성적으로 나타났다면 반드시 전문의료기관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 올바른 치료 방향을 정하는 것이 척추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다”라고 조언했다.
운동량은 줄어드는 반면 컴퓨터 사용량이 늘어난 현대인들은 만성적으로 허리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허리의 통증을 디스크의 전조증상으로 아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디스크 증상은 허리에 나타나는 경미한 통증부터 감각이상이나 마비와 같은 심한 통증까지 개인마다 차이를 보이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본격적인 디스크로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전조증상이 나타났을 때 치료를 받아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옛말이 있다. 가벼운 통증이라고 해서 우습게 여기다가는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큰 병을 자초할 수 있다.
<심형준 기자 @cerju2> cerju@heraldcorp.com
<도움말 : 자생한방병원 척추디스크센터 김정철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