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가 제품가격을 자율 결정하는 오픈프라이스제도가 시행 1년을 맞아 ‘공공의 적’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 가격 거품이 사라질 것이란 애초 기대와 달리 물가 인상의 진원지 역할을 하는 등 부작용만 잔뜩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매점마다 들쭉날쭉한 제품값과 소비자를 유혹하는 일부 소매점의 선심성 ‘50% 할인’ 문구 남발도 오픈프라이스제도가 몰고 온 후유증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오픈프라이스는 제조사가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는 것을 금지하고, 최종 판매자가 자율적으로 가격을 정하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는 권장소비자가격을 부풀린 뒤 최종 판매자가 이를 대폭 할인하는 형태로 왜곡됐던 유통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시행했다. 그러나 정작 유통업체 간 자율경쟁을 통해 가격 거품을 없애려 했던 제도는 확대 시행 1년도 채 안 돼서 유명무실한 상황을 맞았다.
▶기대했던 ‘부담 없는 가격’은 공(空)수표?=라면과 과자, 아이스크림 등 권장소비자가격의 부담에서 벗어난 제품들은 1년 사이 가격이 훌쩍 뛰었다. 소매점 사이의 경쟁 덕분에 가격이 내려갈 줄 알았지만 오히려 천정부지로 가격만 높여 놓은 셈이다.
해태제과의 ‘부라보콘’은 이마트 양재점에서 1년 사이 19%, 롯데마트 중계점에서도 19%가량 가격이 뛰었다. 삼양식품의 ‘삼양라면’도 농협하나로클럽에서 15.31%가량 가격이 올랐다. 농심의 ‘새우깡’ 역시 일부 대형 마트에서 20%가 넘는 가격 인상 폭을 보였다. 편의점에서도 일부 아이스크림 값이 20% 가까이 뛰었다.
▶여전히 범람하는 ‘50% 할인’ 유혹의 문구=동네 슈퍼마켓 등 생계형 소매점에서는 아직도 ‘아이스크림 50% 할인’ 등의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에겐 오픈프라이스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의 한 소매점에서는 아이스크림을 보관한 냉동고 위에 ‘아이스크림 50% 할인’이라는 안내문구를 붙여놨다. 계산원은 롯데제과의 ‘월드콘’은 원래 2000원인데 50% 할인해서 1000원에 판매한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이 같은 선전은 오픈프라이스제도에서 금지되는 영업활동이다. 권장소비자가격이 사라졌기 때문에 기준가에서 특정 비율을 할인한다는 선전은 불가능하고, 각 판매점에서 정한 가격 자체를 알려야 한다. 일부 소매점이 버젓이 할인 판매 문구를 내걸며 선심 쓰듯 영업하고 있다. 골목상권은 여전히 할인 영업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회사원 조모(32) 씨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봉지 과자에 대해 ‘50% 할인’ 등의 문구를 많이 걸어놔 당연한 선전인 줄 알았다”며 “여태까지 원가가 부풀려져 있었다고 생각하니 속은 기분”이라고 전했다.
도현정 기자/kate01@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