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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의 고향에서 쓴 곽재구의 산문집
라이프| 2011-07-29 07:01
“내 꿈속에 꽃이 핀다면/저런 형상으로 필 것이다//....//고단한 하루 일을 끝내고/아기를 잠재운 어머니가/비로소 떠나고 싶은 짧은 한 세상이 있다면/그것은 바로 저 꽃의 순결한 그늘일 것이다//...//언젠가 한 번 꽃 피거든/이 꽃만큼만 피어라//”(‘보순또 바하 꽃이 필 때’)

‘사평역에서’의 시인 곽재구(57)가 9년만에 산문집을 냈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톨 펴냄)은 시인이 2009년 7월부터 이듬해 12월말까지 타고르의 고향, 한적한 시골마을 산티니케탄에 머물며 타고르가 사랑한 사람과 땅과 별, 꽃을 느끼며 1초 1초의 행복을 경험한 얘기다.

밤하늘의 별 세듯 1초1초, 하루 8만6400초를 만지며 시인은 거기서 지극한 평온함, 행복을 만났다. 그것은 일종의 데자뷔이기도 하다, 시인은 70년대 중반 엄혹한 정치현실속에서 타고르의 시를 통해 그런 축복같은 시간과 영원을 경험한 것이다.


시인의 인도여행은 그때 싹터 오래 마음에 묵혀졌다. 여행의 의도는 벵골사람 속에 함께 살며 타고르의 모국어인 벵골어를 익혀 그의 사랑스런 시편들을 한국어로 직접 번역하겠다는 데 있었지만 시인은 말보다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다. 벼룩시장에 종이배를 팔러나온 아이, 현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몸과 마음이 아플 때 타고르의 영혼처럼 다가와준 암리타, 맨발의 소녀 론디니, 말끔하게 차려입고 인력거를 몰며 개와 고양이, 길가의 꽃과 나무 등 모든 생명에게 ‘발로 아첸’(안녕) 인사를 건네는 인력거꾼 수보르, 산티니케탄 최고의 가문 출신으로 영문학 강사인 투툴의 얘기들은 동화처럼 아름답고 환하게 빛난다. 나무 그늘에 앉아 기도하며 공부하고,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뽀뽀하고 꽃을 꺽어 바치며 사랑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거기에 있다.

벵골어를 알아가는 일은 낯선 언어를 배우는 것 이상이다. 아이가 그냥 말을 알아가는 것과 달리 시인의 말 배우기는 인간과 자연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은하수’를 의미하는 ‘아카시 강가’는 하늘을 흐르는 어머니의 강이란 의미다. 아카시는 하늘이라는 뜻이고 강가는 모든 인도인들이 사랑하는 어머니의 강, 갠지스. 시인은 아카시 강가야 말로 세상에서 은하수를 나타내는 가장 아름다운 말일거라고 생각한다.

‘달빛의 냄새’가 난다는 ‘조전건다’ 꽃나무는 벵골어의 아름다움과 직관, 깊이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곽재구, 시인, 순천대학교 교수/


집을 구하면서 함께 고용해야 했던 마시(가정부)와의 밀고 당기기, 론디니네 가족들과 기탄잘리에서 영화보기 등 차이에서 소통으로 나아가는 얘기들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시인이 만난 풍경과 사람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산티니케탄은 우리 시골 동네처럼 친근하게 느껴지고 릭샤왈라(인력꾼),마시(도우미), 다다(아저씨)와 같은 말과 암리타, 수보르 같은 이름들이 다정하게 다가온다. 시인은 산티니케탄에서 하나의 단어를 건져올린다.

“북유럽의 그 어떤 잘사는 나라들도 인도가 주는 이 평온감을 감당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적빈(寂貧). 지극히 고결한 삶에 대한 인식이 이들의 삶속에 스며 있는 것입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사진은 위에서부터 시인이 즐겨찾던 노천카페의 반얀트리. 그 아래서 시인은 시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중간 사진은 달빛의 냄새가 나는 신비스런 조전건다 꽃나무. 아래 사인은 시인 곽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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