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주말을 쉬고 월요일 출근길에 올랐던 사람들은 거의 모든 신문의 1면, 또는 사회면을 장식한 이같은 뉴스에 너나없이 혀를 찼다. 내로라 하는 명품업체들이 한국서 돈을 갈코리처럼 훑어 본국에 송금하기 바쁘면서도, 사회공헌엔 지극히 인색하다는 사실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문화행사 ‘트랜스포머’에 200억 쓰고도 뭇매맞는 프라다= 명품 중 ’최강자’인 루이비통코리아는 2009년 매출 3721억, 순이익 565억원을 올려 이중 무려 440억원(순이익의 84%)을 본사에 송금했다. 반면에 기부금은 고작 4000만원만 출연했다. 2820억원의 매출을 올린 구찌의 기부금 또한 매출액의 0.01% 수준이었다.
또 프라다 코리아는 당기순이익의 77.2%에 달하는 150억원을 네덜란드 소재 모(母)회사로 송금한 반면, 2006년 이래 기부금 실적은 ‘0원’인 것으로 나타나 가장 심한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이같은 보도는 약간 오류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프라다는 지난해 150억원을 본사에 송금하긴 했지만, 이는 1994~2008년(15년간)의 총배당액(90억)과, 2009년도 배당액(60억, 순이익의 30.9%)을 합친 것이었다. 프라다는 2008년 들어서야 순이익이 100억원대에 접어들었을 뿐, 지난 94년 한국지사 창립 이래 적자였던 해도 많았다. 그래서 배당을 유보했다가, 작년에 15년치(90억원)를 한꺼번에 송금했다가 공교롭게 ‘먹튀 논란’에 맞닥뜨린 것.
하지만 한 매체의 보도를 여타 언론들이 죄다 받은 뒤라 프라다측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일일이 대응해봐야 소용없다”며 반박자료를 내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에 전혀 공헌을 안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프라다는 지난 2009년 서울 경희궁에서 ‘프라다 트랜스포머’라는 대규모 문화예술 이벤트를 열며 200억원 넘게 쓴바 있다. 그러면서도 거의 대응하지않는 건 명품업계 특유의 ‘모르쇠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런 경우 명품 본사들은 대부분 “일일이 대응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린다.
▶도마에 오른 명품 브랜드들= 근래들어 샤넬, 루이비통 등등 명품 업체들은 한-EU(유럽연합) FTA 체결로 관세가 철폐됐음에도, 가격을 더 올려 맹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명품 브랜드들은 “언론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대중이야 비난하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쓸 거 없다”며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같은 콧대 높은 전략은 명품업체의 오랜 불문율이다.
대중들이 명품의 행태, 즉 턱없이 높은 가격과 고(高) 자세, 부실하기 짝이 없는 애프터서비스에 대해 평소엔 입에 거품을 물고 질타하지만, 정작 매장에만 오면 ‘순한 양’이 되는 이중성을 무수히 목도했기 때문이다. 분노나 적대감은 간데 없고, ‘명품을 못사서 안달’인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서 연간 수천억원씩 매출을 올리면서도 사회공헌이나 AS 등엔 나몰라라 하는 것. 명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그나마 에르메스코리아 정도가 ‘에르메스미술상’이며 부산국제영화제 후원 등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을 뿐, 다른 명품들은 ‘한국사회 기여’같은 건 아예 관심도 없는 것같다”고 평했다.
한편 명품의 상당수가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생산되고 있고, 그 비중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도 FTA와 관련해 업체들의 입을 ’꽉’ 다물게 하는 요소다. 실제로 선글라스, 의류 등은 상당부분 중국서 제조되고 있다. 핸드백 또한 까다로운 손잡이 부분 등은 유럽서 만들지만, 단순작업은 중국서 맡는 예가 늘고 있다. ‘made in China’이다 보니 FTA체결에 의한 관세철폐라든가 가격인하완 무관한 것이다. 그런데 명품 소비자들은 명품이 ‘made in France’, ‘made in Italy’이길 원한다. 숙련된 장인이 한땀한땀 수놓듯 만든 것에만 비싼 값을 치르려 하는 것.
▶향후 늘어날 ’중국산 명품’,고객이 과연 열광할까?= 명품 중에는 요즘 중국산이면서도 이탈리아제, 프랑스제로 둔갑되는 예가 적지않다. 지식경제부 무역위원회는 최근 중국서 제조한 선글라스와 안경테를 이탈리아, 일본제인 것처럼 원산지를 허위표시한 업체 세곳을 적발했다. 이처럼 수입통관 단계에서 적발된 안경테(선글라스)의 원산지표시 위반건수는 지난해 자그만치 744건에 달했다.비단 선글라스 뿐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의 의류와 가죽제품도 중국산 비중이 크게 늘 것이 확실시돼 과연 우리 소비자들이 ‘중국산 명품’에도 그렇듯 열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8월 들어 명품업체들은 ’유럽과의 FTA 체결로 인한 관세철폐’를 감안해 핸드백, 의류, 액세서리의 가격을 5%씩 인하했다. 그러나 올초 이미 구렁이 담 넘어가듯 가격을 크게 올린 뒤라, 고객들의 입맛은 씁쓸하다. 샤넬의 경우 FTA 발효 한달 뒤에야 “전(全)제품의 가격을 5%씩 내린다”고 발표했다.
이에따라 ’클래식 캐비어 미디엄’ 백은 579만원에서 550만원으로, ’2.55 빈티지 미디엄’ 백은 639만원에서 607만원으로 인하됐다. 가격을 인상할 땐 20~25%를 단숨에 올리지만, 가격인하는 찔끔(?) 시늉만 낸 셈. 이에 열혈(?) 소비자들은 “간에 기별도 안가고, 유럽에 비해 150만~200만원이나 비싸다”며 ’샤테크’(샤넬백을 싸게 사는 재테크)를 위해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은 ’명품 열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
글 사진=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