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19일. 6.2서울시교육감 선거를 코 앞에 두고 극적으로 진보 진영의 후보 단일화가 이뤄졌다. 박수와 환호 속에서 시작된 곽노현과 박명기의 인연의 끈은 그러나 서서히 꼬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스스로 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꼬일대로 꼬인 둘의 관계는 결국 검찰이 빼든 칼에 의해 완전히 갈라섰다.
▶화기 애애한 만남 = 지난해 6.2서울시교육감 선거를 놓고 대여섯 명이 진보 진영을 대표하겠다며 나섰다. 후보 난립은 필패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단일화 논의가 급속도로 이뤄졌고 그해 4월 14일 ‘민주·진보 서울시교육감 시민추대위’는 곽노현 후보를 단일 후보로 결정했다.
문제는 가장 먼저 선거전에 뛰어들었던 박명기 후보가 “단일화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며 사퇴를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비록 공정택 전 교육감이 온갖 비리 혐의로 물러났지만 워낙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교육계에서 복수의 진보 진영 후보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곽 교육감과 박 교수의 관계는 이때부터 복잡미묘해졌다. 선거일을 2주 가량 남긴 5월 17일 서울의 모처에서 두 후보 측은 만났다. 시민사회 단체의 지원이 탄탄한 곽 후보와 교육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박 후보의 단일화 논의는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질 정도로 쉽지 않았다.
산통 끝에 5월 19일 곽 후보로 단일화 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박 후보의 사퇴 이유는 간단했다. ‘대승적 차원의 용퇴’였다. 그리고 곽 후보는 34.3%를 득표, 1.1%p차이로 보수 진영 이원희 후보를 물리치고 교육감이 됐다.
▶분란의 씨앗, 거래 = 곽 후보의 당선은 지난했던 단일화 과정을 단숨에 잊게 했다. 그러나 박 후보가 선거기탁금 5000만원과 그 동안 쓴 수억원의 선거비용을 아무런 보상 없이 ‘대승적 차원’에서 날렸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같은 대의명분만으론 부족한 게 현실정치다. 명분과 현실의 간극을 메워주는 게 이른바 ‘지분’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진한)는 구속된 박 교수를 통해 “후보 사퇴 대가로 7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진술을 얻어냈다. 당시 박 교수는 선거 비용으로 5억~6억원의 빚이 있었다. 또한 교육발전자문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약속했고 서울교대 총장이 되도록 힘 써 주겠다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진영을 ‘윈-윈’ 할 수 있게 이끌어 준 이 같은 거래는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둘을 갈라놓는 시발점이 됐다. 박 교수 측은 곽 교육감이 당선 이후 달라졌다고 성토했다. 약속된 위원장 자리가 아닌 그보다 낮은 부위원장 자리가 돌아왔으며 돈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박 교수 측은 주장한다. 급기야 박 교수는 지난해 10월 곽 교육감의 집무실을 찾아가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있었다. 검찰이 입수한 양측의 회동 내용이 적힌 문건은 박 교수가 곽 교육감을 압박하기 위해 작성한 녹취록 등으로 알려졌다.
곽 교육감은 2억원을 ‘순수한 선의’로 박 교수에 건넸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바로 이 돈이 박 교수의 후보사퇴 대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수세에 몰린 곽노현 = 곽 교육감은 후보 단일화 뒷거래 의혹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박 교수를 모른척 할 수 없어 ‘순수한 선의’로 줬다”고 밝혔다. 돈이 건너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대가성은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지난 29일 곽 교육감은 예정된 일정을 평상시처럼 소화하며 “검찰 수사나 재판에 당당하게 임하겠다”고 말해 사퇴의 뜻이 없음을 밝혔다.
그러나 곽 교육감을 지지한 민주당 등 야당은 물론 시민사회단체까지 그의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27일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만해도 ‘표적수사’라며 검찰을 향해 맹공을 퍼붓던 이들이 곽 교육감의 기자회견 이후 오히려 등을 돌린 것이다.
검찰은 곽 교육감 사법 처리를 자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9일 “상당한 물적·인적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미 돈을 받았다는 박 교수로부터 혐의 사실 대부분을 인정하는 진술을 받아냈고 곽 교육감의 최측근인 강모 교수를 전날 체포해 조사하는 등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곽 교육감이 스스로 건넨 돈의 액수가 2억원이라고 밝힌 것도 검찰을 의기양양하게 만든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검찰은 당초 1억5800만원이 박 교수에게 흘러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곽 교육감이 알아서 돈의 액수를 밝힌 것은 그만큼 검찰 수사가 상당 부분 진척돼 객관적 사실은 숨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