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흔적’을 그리는 독일화가 팀 아이텔,"The Placeholders"전
라이프| 2011-09-06 10:28
어두운 복도 한켠에 누군가의 잠자리가 있다. 낡은 간이침대 위엔 때가 잔뜩 낀 침구가 어지럽게 놓여있을 뿐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흔적만으로도 고단한 삶이, 고독한 존재가 눈 앞에 어른거린다.

독일의 떠오르는 ‘샛별’ 팀 아이텔의 작품 ‘무제(간이침대,2009)’다. 그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것을 그린다. 지금까지 회화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을 담아냄으로써 그 것들을 응시케 한다. 바로 회화의 힘이다.

거리를 방황하는 노숙자의 흔적, 낯선 장소를 방황하는 여행자, 지쳐서 낙담한 도시인을 그리는 작가 팀 아이텔(Tim EITEL,40)의 개인전이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막됐다. ’더 플레이스 홀더스(The Placeholders)’라는 타이틀의 이번 전시는 작가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으로, 오는 10월 23일까지 계속된다.

팀 아이텔은 어두운 곳, 구석을 응시한다. 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 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를 위해 LA에 머물렀을 때도 베버리힐즈, 헐리우드가 아닌, 열악한 도시변두리와 노숙자를 주시했다. 그리곤 그들의 소외와 절망감을 잿빛 톤으로 그려냈다.



2009년작 ‘시위’는 자신의 현존을 내던져 세상을 향해 시위하는 낙오자의 외침을 표현한 회화다. 그의 이 시위가 무기력하게 끝날 것임을 우리는 모르지않는다. 하지만 탄탄한 구성과 장인적 완벽함으로 마무리된 아이텔의 그림은 그 어떤 요란한 구호 보다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의도적인 생략은 현장의 분위기와 느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의 그림은 앤디 워홀류의 팝아트와 대척점에 서있다. 세상의 부조리와 고독한 존재를 그린 작품들은 한결같이 배경이 생략돼 있다. 주인공도 부재하기 일쑤다. 그러나 구체적인 설명이 배제됨으로써 오히려 보편적 상황으로 전환된다. 관객 누구도 될 수 있는 ’열린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 말이 없음으로써 더 많은 말을 들려주고 있는 셈이다. 작가는 목청껏 부조리를 고발하지도, 값싼 화해를 요청하지도 않는다. 현대의 우울과 공허감을 담담히 표현함으로써 관객들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유케 할 뿐이다.



팀 아이텔은 네오 라우흐(Neo Rauch), 안나 테센노우(Anna Tessenow) 등과 더불어 독일 현대회화를 이끄는 ‘뉴-라이프치히파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한 그는 대학원에서 고전적 회화방식을 고수해온 아르노 링크 교수에게 사사했다. 그의 그림은 도이치 뱅크 컬렉션을 비롯해 해외 유명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독일 미국 스위스 프랑스 등 세계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졌고, 마리온 에르머(Marion Ermer-Preis) 상을 수상했다.


이번 서울 전시에는 스타디움을 그린 초기작(2001)에서부터 신작까지 두루 망라됐다. 작가는 "예전 작업과 최근 작업을 한자리에서 보니 (나도) 반갑다”며 "등장인물의 뒷모습을 그리는 것은 관객들에게 열린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뒷모습은 더 편안하게 대상에 빨려들게 한다”고 말했다. 02)739-4937.
(사진)팀 아이텔 作 Five Men Around a Table,유화, 175x210cm, 2011, 팀 아이텔 作 Untitled (Cot), 유화, 22.9x22.9cm, 2009, 팀 아이텔 作 Untitled(Protest). 유화 (2009)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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