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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달 속 엄마 얼굴이…눈물이 핑도네요”
뉴스종합| 2011-09-09 11:19
순찰 돌고…응급환자 호송…

명절에 눈코뜰새 없는 경찰


기업들 특근수당 짭짤

일부 근로자들 귀향 포기


친척 만나면 결혼 스트레스

노총각·노처녀 나홀로 추석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은 항상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넘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총 2930만명이 귀성길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간만에 부모님, 일가 친척 및 고향친구를 만나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는 때이지만 추석에도 일을 하느라, 혹은 고향 갈 염치가 없어 타향살이를 계속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가 없으면 추석은 어찌 돌아가나요? 일하느라 바쁜 사람들=경기 광명시 철산지구대에서 근무하는 홍기만 경사는 추석에 집에 내려가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교대 근무 위주로 진행되는 업무 특성상 전라남도 고흥인 본가까지 내려가기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 이번 해에는 어떨까 생각해봤지만 추석 다음날인 13일 조간 근무에 걸려 결국 고향행을 포기했다. 대신 지난 6~7일 비번을 틈타 고향에 내려가 먼저 인사를 드렸다.

홍 경사는 “최근엔 지구대에서도 명절기간 순차적 휴가를 실시해 고향을 방문하는 후배가 늘었지만 고향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항상 일주일 전쯤 다녀왔다”고 말했다.

명절이면 홍 경사 같은 경찰 근무자는 더 바빠진다. 빈집털이범이 늘어나는데다 모처럼 만난 가족ㆍ친지가 술을 한 잔 걸치다 크게 싸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작은 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갑자기 발생하는 응급환자를 대학병원 등에 호송해야 하는 업무도 늘어난다.

홍 경사는 “명절에 맞춰 고향에 가면 더 좋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자리를 비우면 큰 일이 생겼을 때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며 “다른 분들이 안심하고 편히 다녀올 수 있도록 힘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 믿고 열심히 근무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석을 나흘 앞둔 8일 서울 경복궁 내 자경전에서 강원도 횡성 갑천중학교 학생들이 조선시대 왕실 일가의 밥상인 수라상을 차리는 법을 시연하고 왕과 상궁의 역할을 하면서 수라상을 받는 체험을 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등록금ㆍ생활비, 아쉽지만 ‘추석은 우리의 대목’=추석을 맞아 고향에 가고 싶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등록금,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향행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사람 구하기 힘들다며 특별근무수당을 챙겨주는 추석 알바는 이들에게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대학생 민영기(21) 씨는 아르바이트 전문 사이트를 통해 추석 ‘알바’ 자리를 구하려 애썼다. 예년 같으면 내려가는 사람이 많아 일자리를 구하기 쉬웠는데 최근에는 돈을 더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경쟁률이 많이 올라간 상태다.

실제로 평상시에는 시간당 4320원의 최저임금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추석 연휴기간 등에는 시간당 6000원짜리 고액 단기 알바 자리가 급증한다.

민 씨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추석기간 식당 서빙 단기 알바를 뽑는데 6명 모집 공고가 난 지 두 시간 만에 50명이나 문자로 지원했다고 한다”며 “귀성 열차표 예매처럼 그저 빨리 지원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경희대에 다니는 노선형(22ㆍ여ㆍ가명) 씨은 현재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하고 콜센터에서 상담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제주도가 고향인 그는 이번 추석에 부모님으로부터 “남매 모두 내려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추석 때 돈 들 것도 많고 8월 초 방학 때 다녀갔으니 추석엔 안 와도 된다는 것. 50만원이 넘는 비행기값이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노 씨는 이번 학기부터 직접 돈을 벌어 비행기값을 충당할 계획이다. 같은 팀의 20명 중 3명이 노 씨와 비슷한 신세로 추석에 출근한다. 노 씨는 “다른 사람은 명절에 모두 가족과 함께 지내는데 교통비가 부담이 돼 못가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열심히 아르바이트 해서 다음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고 장학금을 타 집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친척과 만나면 오히려 불편해요” 고향을 외면하는 사람들=화장품업체에 근무하는 박모(38ㆍ여) 씨는 명절 때마다 괴롭다. 평소엔 부모님도 지친 듯 결혼하란 말을 안하는데 명절 즈음만 되면 다시 결혼하란 잔소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난 설명절 때 4년 만에 만난 고모는 “돌싱도 괜찮은 사람 많다”며 어떻게 해서라도 박 씨를 해치워버리려는 듯 작정하고 결혼 얘길 꺼냈다. 타의에 의해 자꾸 약해지는 자존심을 붙들려 박 씨는 올 추석 때 건강검진을 신청했다. 스스로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평소 ‘짠순이’인 그도 이번만큼은 통크게 쓰기로 했다. 기본항목에 내시경과 초음파 등 선택 항목도 고루 추가했다. 100만원이 훌쩍 넘었다.

혼자서 세살 난 딸 아름(가명)이를 키우는 ‘싱글맘’ 김모(30) 씨는 2년 전 임신ㆍ출산을 하면서 가족과 명절을 같이 보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6년 전 부모님이 별거하면서 동생들과 집을 나온 뒤부터 아버지와는 연락이 끊긴 상태이고, 어머니는 재혼하면서 관계가 멀어졌다. 추석이 다가오지만 명절이라고 따로 음식을 준비한다든가 추석빔을 맞출 엄두도 못 낸다.

일정한 직업이 없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을 받고, 지인으로부터 받은 도움으로 아름이 우유값을 충당하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이 되면 그냥 앉아서 TV 보는 시간이 더 늘 뿐”이라는 김 씨는 “명절 연휴에 TV를 끄고 가족과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지만 그게 어렵다”고 한탄했다.

기동취재팀/mad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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