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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파이 키워 고용창출…‘진화형 노조’ 협력 절실하다”
뉴스종합| 2011-09-09 10:58
복수노조 연착륙 단계

상급단체 선택안한 비율 86%

새 노총 출현 열망 강해


한진중 사태, 회사대응 미흡

근로자 이해구하는 노력 절실


비정규직 차별 철저감독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목표

지난 6일 이채필(55)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났다. 취임 100일이 된 것을 핑계로 ‘강권(?)하다시피’ 마련한 자리다. 추석 연휴 귀성 계획부터 물었다. 고향은커녕 가족과 함께 추석을 보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 참석차 터키 이스탄불로 출장을 가야 하는 일정 때문이다. 그는 “불행스러운 것인지, 다행스러운 것인지 빨간 날만 일이 있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만 일이 있다”고 말했다. 장관 자리에서 개인 생활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 장관은 한 쪽 다리가 불편하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전태일, 한진중공업, 복수노조, 비정규직 문제 등 다소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도 소신을 분명하게 밝혔다. 30년 고용노동부에서 일자리와 노동행정을 펼치면서 쌓은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이 녹아 있었다. 고용노동부 관료 출신으로 처음으로 해당부처 장관 자리까지 오른 이 장관의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일자리 늘리는 노사관계’를 지향하는 이채필 장관은 누구 편일까. 이 장관은 “노조는 사측 편을 든다고 하고, 사측은 노조 편을 든다고 한다”며 하소연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이채필은 누구
▷울산 출생(1956년) ▷검정고시(고교) ▷영남대학교 행정학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 ▷25회 행정고시 합격 ▷노동부 사무관ㆍ고용정책관ㆍ기획조정실장ㆍ노사정책실장 ▷고용노동부 차관

#따뜻한 가슴

-이소선 여사 문상을 가셨는데, 어떤 의미인가.

▶국무회의를 마치고 이소선 여사 빈소를 찾았다. 이 여사는 3년 전에도 직접 만났다. 그는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 분이 이제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쉬움을 담아서 문상을 했다. 그리고 고용부 주무장관으로서 문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장관에게 전태일 열사는 어떤 존재인가.

▶그 당시 70년대였다. 그야말로 성장 가도로 달려가던 시절이어서 근로조건이 열악했다. 근로시간이 장시간 이어졌고, 작업환경도 나빴다. 소음이나 분진이 풀풀 나고, 귀에 윙윙거리는 소음도 많았다. 그 시절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말한 것은 당연히 가야 될 길이었다. 노동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절실한 과제를 주장하는 것이 맞다.

-취임 100일 동안 여러 현장을 다녔다. 기억에 남는 곳은.

▶노사협력 사업장인 하이닉스반도체도 가고, 노사갈등 사업장 한진중공업도 갔다. 또 지방에 조그마한 강소기업 데크항공도 방문했으며, 기초생활수급자가 자립하고 있는 동양센서도 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숭실대학교 청년의 창조캠퍼스다. 우리가 뻗어 나갈 수 있는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업무영역은.

▶과거 노동부의 중점은 일자리를 갖고 있는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이 가장 큰 비중을 가졌다. 현재 고용노동부에선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과 일자리를 유지하고 만들어내는 기업까지 포함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때문에 경제ㆍ사회ㆍ정치 세 측면을 모두 넘나들게 된다. 경제장관회의에 가면 경제부처로 분류되지만,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의할 때는 사회부처로 분류된다. 과거보다 3배나 일이 늘어난 셈이다.

#차가운 머리

-취임사에서 말한 ‘일자리 늘리는 노사관계’는 가능한가.

▶노사 힘의 불균형에 따른 근로자의 불이익을 해소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노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몫을 키우는 역할을 회사에만 맡겨서는 안된다. 근로자와 노조도 차원을 뛰어넘어 회사의 파이를 키우는 데 역할을 해야 된다. 이런 통 큰 노사관계가 될 때 일자리를 늘리는 노사관계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런 노사관계의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노조가 사업장의 불량품을 없애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노조가 조합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노조의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다. LG전자 같은 경우에는 비교적 그런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LG전자도 완성 단계는 아니지만 일자리를 늘리는 데 나름대로 중점을 두는 ‘진화형 노조’로 볼 수 있다.

-진화형 노조란 어떤 것인가.

▶불만사항을 시간적으로 지체시키지 않고 노사가 바로바로 조치하는 것을 말한다. 노조가 불만사항에 대해 빨리 개선해 달라고 투쟁만 할 것이 아니라 “이걸 이렇게 고쳐 나가자”고 제안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다.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불만사항이 오히려 순기능을 하는 요소로 바뀌게 된다. 덩달아 대립적 노사관계를 넘어 협력적 관계로 진화하게 된다.

#날카로운 분석

-복수노조는 잘 시행되고 있나.

▶지난 7월 시행된 복수노조는 우리나라 노동조합법이 만들어지고 48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외국에선 자연스럽게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도입하는 데만 반세기가 걸렸다. 시행한 지 두 달 됐는데 사실상 연착륙 단계에 접어들었다. 7월에는 하루 평균 10개 정도, 8월에는 4개 정도 노조가 생겼다.

-상급단체 가입 안하는 신설노조가 많은 이유는.

▶새로 생긴 노조의 73%는 기존 노조에서 새로 분화한 노조다. 즉, 기존 노조의 노선이 근로자 의사를 제대로 대변해주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분할된 것이다. 그리고 분할된 노조 가운데 14%만 상급단체를 선택했다. 상급단체를 선택하지 않은 비율이 86%에 이르고 있다는 얘기다. 기존 노조 입장에서 볼 때는 반성해야 하는 대목이다.

-제3노총에는 유리한 현상이지 않나.

▶옛날처럼 정치적 활동을 위주로 했다가는 조합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다. 즉, 현장 근로자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상급단체를 선택하지 않은 노조가 86%에 이른 점은 의미있다. 새로운 상급단체를 바라는 열망이 높으면 새 노총의 지지세가 이른 시일 내 높아질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좀 두고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정부로서 그 부분을 속단하기 어렵다.

-신설노조 상당수가 어용이라는 말도 있다.

▶어용노조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 개입을 사용자가 하는 것은 법에서 금하고 있다. 그런 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에는 가차없이 처벌할 것이다. 노사 막론하고 법을 위반하면 처벌할 생각이다.

#흔들림 없는 원칙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 노동시장에서 임금 결정 원리에 비춰볼 때 숫자를 가지고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안맞다. 비정규직을 무분별하게 남용한다든지, 불합리한 차별이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옳은 목표이고 그것을 위해서 지도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이 맞다.

-그럼 비정규직 임금체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통계적으로 남녀, 근속기간, 직종, 경력 이런 조건을 동일하게 했을 때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87%로 나타나고 있다. 그냥 단순비교했을 때는 57% 수준이다.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 임금의 특정 수준으로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 조건이 같으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차별적 처우 없이 똑같이 받는 것(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목표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는 어떻게 봐야 하나.

▶근로자 입장에선 직장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를 함에 있어 경영상황의 어려움이라든지, 그 불가피성에 대해 진지하게 근로자가 이해하게끔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서는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회사에다 질책을 많이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충분하게 근로자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남은 임기 동안 하고 싶은 일은.

▶기본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는 정책을 펼치고 싶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제도는 고치고,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촉진하는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에 계속 치중하고 싶다. 경제장관회의라든지, 국무회의에서 건의하고 의견을 낼 생각이다. 그리고 일자리를 늘리는 것에 디딤돌이 되는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

다음에는 지역 특성에 맞는 일자리 정책을 펼치고 싶다. 그동안 중앙 위주의 정책이 많았다. 그러나 지역마다 그 지역특성이 있다. 지역 현장 특성에 맞는 일자리 창출이 되기 위해서는 일자리 목표 공시제가 필요하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93% 정도가 일자리 목표 공시제에 동참하고 있다. 그 부분이 제대로 정착이 되도록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장시간 근로 국가다. OECD 가입국 가운데 가장 오래 일한다. 장시간 근로를 줄여야 한다. 병원이라든지 공익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고 단순 비용절감을 위해서 24시간 가동하는 경우는 바람직하지 않다. 일례로 자동차의 경우 주간 연속 2교대제로 전환해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일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장시간 근로에 대한 구체적 해법 있나.

▶큰 병원에서 야근 담당하는 조가 있다면, 병원 응급실에 가지 않고 곧바로 해당 진료과로 갈 수 있다. 또 도서관, 박물관도 마찬가지로 야근조를 따로 두면 이용자가 편리하다. 보육시설도 야근조를 두고 이용료를 약간 높게 받아 운영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도서관이나 박물관은 시간제 근로자를 고용해 주말이나 공휴일에 열면 그 만큼 반듯한 일자리가 늘어난다.

-고용부 출신 첫 장관이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30년 가까이 고용부에서 일한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고용부 안의 사람들을 비교적 많이 알기 때문에 적재적소에 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 정책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국민 입장에서 고민하고 직원과 호흡을 맞추고 싶다. 후배들도 그런 방향에 대해서 같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주면 좋겠다. 



정리=박도제 기자/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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