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고용부 자살 산재근로자 데이터 실종...유감
뉴스종합| 2011-10-13 08:18
자살은 원칙적으로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법원은 그러나 업무상 재해로 투병하다 목숨을 끊거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은 산재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이 업무 중 심하게 다친 뒤 14년간 후유증으로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또 대법원은 과도한 민원상담 업무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한 경우에도 산업재해에 해당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자살 동기와 관련해 뚜렷한 증거가 없더라도 업무 연관성이 높고 정황적으로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최고인 우리나라에선 얼마나 많은 근로자들이 자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산재 판정을 받고 있을까. 자살이 우리나라 사망원인 가운데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상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먼저 산업재해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에 물어봤다. 담당자는 근로자 자살 숫자를 따로 관리하지 않으며, 산재 사망자 가운데 자살로 인한 사망자를 따로 분류하고 있지 않아 그 숫자를 알 수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의 자료를 받아 산업재해 원인을 파악하고 있는데, 그 쪽에서도 자살에 대해서는 별도로 분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에도 문의했다. 몇차례의 통화 끝에 조금더 구체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지만, 매년 어느정도 근로자가 자살로 산재판정을 받는 지를 알 수 없었다. 이들의 숫자가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타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산업재해 데이터만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자료는 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를 통해 파악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산업안전보건공단에도 전화를 돌렸다. 자살로 인한 산재사망자 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주무부처인 고용부가 자살 관련 자료를 요청하지 않기 때문에 산하 기관에선 특별하게 분류코드를 부여하고 관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자살율과 산재사망율이 모두 OECD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자살로 인해 근로자들이 얼마나 죽고 있으며, 산재 판정을 받고 있는 지에 대한 데이터는 우리나라에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그나마 그 숫자를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지난 2004년 국정감사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던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내놓은 자료이다. 당시 단 의원은 배포한 자료를 통해 산재근로자 자살 건수는 2001년 20명, 2002년 18명, 2003년 39명, 2004년 상반기 19명이라고 지적했다.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산재 근로자의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년만에 처음으로 산업 재해율이 처음으로 0.6%대로 진입했다. 오는 2014년에는 사고사망자수 사고재해율 등을 30%나 낮추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근로자의 자살과 이로 인한 산재 인정의 체계적인 관리가 요구된다.

<박도제 기자 @bullmoth> 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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