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무기력한 與·무책임한 野…정치놀음에 외면당한 FTA
뉴스종합| 2011-10-31 11:25
서울시장 선거 패배이후

강행처리 역풍 두려워

168석 공룡여당 몸사리기


盧정부때 체결 앞장섰던 민주

야권통합 동력에만 몰두

무조건 안돼로 일관



‘공룡’ 거대 여당은 눈치만 보고, 제1야당은 총ㆍ대선 표 계산에만 여념없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볼모로 펼치고 있는 정치권의 속내다. 정치적 손익계산 앞에 ‘국익’이나 ‘신념’ ‘약속’ 같은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다.

31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한ㆍ미 FTA 비준안 처리를 놓고 지루한 신경전만 계속했다. 단독으로라도 강행처리를 하겠다는 한나라당과 몸으로라도 막겠다는 민주당의 기(氣)싸움이다. 지난달, 또 몇 달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미국이 먼저 비준한 후 우리도 하겠다”는 구실로 지난 몇 달간 시간을 벌어왔다. 하지만 미국 상하원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비준을 마무리하면서, 이 핑계 거리조차 사라졌다. 정부와 기업은 내년 1월 1일 비준을 위해서는 31일을 마지노선으로 공식 요청했다.

정부와 청와대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과반수가 넘는 168석을 가진 한나라당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단독 강행처리’라는 꼬리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참패한 데다 물리력을 동원해 단독처리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민심은 더욱 멀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했다. 특히 여권 내에서는 “한ㆍ미 FTA를 체결한 민주당 등 야권을 설득하지 못하고 결국 물리력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까지 온 지도부는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ㆍ미 FTA 비준을 반대한다”는 민주당의 속내도 편치만은 못하다. 한ㆍ미 FTA 반대 깃발 아래 내년 총선과 대선의 필수조건인 야 5당의 동거는 이끌어냈지만, 이 와중에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은 한ㆍ미 FTA 비준안이 국회에 올라온 후에도 몇 년 동안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7월에야 선결조건 ‘10+2’를 내세우며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수차례 여ㆍ야ㆍ정 협의체 회의와 공청회 등을 통해 반대 이유였던 ‘10+2’는 ‘ISD 철폐’ 하나만을 남겨두고 흐지부지됐다. ISD 철폐 역시 “절대 반대의 이유라기 보다는 다른 야당의 입장을 고려한 반대를 위한 구실”이라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이 같은 민주당의 논리는 당 내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외교나 통상을 담당했던 관료 출신 의원들과 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은 “한ㆍ미 FTA는 필요하다”며 당 지도부의 결정에 반발하는 분위기다.

또 “한ㆍ미 FTA로 미국시장을 넓혀가는 것이 국익” “세계 최대 시장이자 기술력, 자본력을 가진 미국과 통 크게 협력해야 한다”며 과거 정부에서 한ㆍ미 FTA를 자신들의 성과로 한껏 치켜세웠던 민주당 현 고위 당직자들의 말 바꾸기 논란에도 시달리고 있다. “당시에는 잘 몰랐다”는 변명은 오히려 인터넷과 여당의 조롱거리만 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육탄 저지’ 결정이 길게 봐서는 발목잡는 자충수가 될 것으로 우려했다. 한ㆍ미 FTA뿐만 아니라 한미동맹 자체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등 일부 야권에 지나치게 양보한 나머지, 당의 정체성은 물론, 향후 집권 시 정책 자율성까지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민주당 의원들 중에는 한ㆍ미 FTA뿐만 아니라 우리 농어촌에 더 위협적인 한ㆍ중 FTA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은데, 집권 후에 이런 목소리는 어떻게 수용해 나갈 것인지 의문”이라며 신념과 소신 부재를 아쉬워했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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