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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고통의 나날들…그들은 여전히‘그 곳’에 있었다
뉴스종합| 2011-11-17 11:29
트라우마 시달리는 주민들

해병대 사격훈련 소리에도

놀란 아이들 구석에 숨고

어른들도 “숨이 안 쉬어져”



마을은 제 모습 찾았지만…

곳곳 날림 공사로 아우성

“금간 부분 안전진단도 없이

대충 메우고 페인트칠”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어획물 손실 감정평가 미흡

軍가족도 한푼도 못 받아

보상금노린 ‘얌체 전입’도





연평도가 북한의 갑작스러운 포격에 불타오른 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돼가고 있다. 복구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연평도는 평온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원래 섬에 살고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복구를 위해 작업을 나온 인부로 섬은 북적이면서 겉으로는 활기를 되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종합운동장 외벽의 포탄 자국과 도로 군데군데 패인 자국이 그대로 남아 1년 전 그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섬 주민의 뇌리와 가슴에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이 그림자처럼 붙어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보상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도 많았다.

▶아직도 아이들은 ‘우리 대피소 가요’=연평공립어린이집에 다니는 김효은(가명ㆍ2) 양은 아직도 어린이집에서 자유로운 주제로 역할놀이를 하라 하면 “우리 대피소 가요”라며 방 한쪽 구석으로 달려간다.

지난해 낮잠을 자던 중 갑작스러운 포격에 급히 대피소로 피했던 만1세에서 5세까지의 어린이 43명의 머릿속에는 당시의 기억이 ‘상처’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에서 사격훈련을 하거나, 헬리콥터가 뜨면서 ‘타타타타’하는 로터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섬으로 돌아온 뒤 심리치료를 받은 아이들이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당시 아이들을 인솔했던 김명숙(52) 선생님은 “아이들이 소리에 민감해 있다. 1년 전의 충격으로 인해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적인 심리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리에 민감해진 것은 어른도 마찬가지.

인근 주민인 홍제순(57ㆍ여) 씨는 “포사격 훈련을 할 때면 가슴이 두근거려 숨을 쉬지 못할 정도”라며 “공사가 밤낮으로 이뤄지면서 마을의 복구는 빨리 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당시의 공포로부터 전혀 치유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돌아가지 못하는 일상을 겪고 있으며 총소리가 날 때마다 되살아나는 상처를 안고 있지만 주민은 ‘여전히’ 연평도에 살고 있었다.

길에서 만난 김모(78) 노인은 “여기는 다른 섬과는 달리 물 많고 양식이 많은 섬이다. 배고프면 뻘에서 굴이며 조개를 캐 먹으면 된다”며 “포소리만 안 들리면 연평도는 낙원”이라고 했다.

텃밭을 매고 있는 박선녀(77) 할머니도 “섬에 왜 다시 들어오냐고? 인천 나가면 뭐해. 내 고향에서 살아야지 자식에게 손벌리며 살 수 있나? 내 집에서 살다가 죽어야지”라고 했다.

▶공사로 북적북적, ‘날림 복구공사도…’=마을은 빠르게 제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완파된 32개의 주택 등이 새로 지어지고 있으며, 19개의 대피소 중 낡아 쓸모가 없는 5개가 폐쇄되고 7개의 대피소가 새로 만들어지는 등 대비태세가 한창이었다.

‘비둘기집’(임시 거주지)에서 지내던 박옥환(62) 씨는 경운기에 짐을 싣고 그리운 집으로 옮겼다. 박 씨의 부인 고선자(59) 씨는 “집이 없어지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다시 집이 생겨 기쁘다”며 “손자도 ‘이제 학교 갔다 오면 방이 생기겠네’라며 기뻐했다”고 말했다.

폭격으로 집을 잃고 연평초등학교 뒤에 마련된 비둘기집에 살던 주민은 지난 31일부터 새로 지은 주택으로 입주를 시작했다. 정부는 이들 주민을 1, 2차로 나눠 오는 20일까지 입주를 완료시킬 예정이다.

날림으로 복구공사가 이뤄지는 부분도 있었다. 갯벌에서 만난 이원곤(44) 씨는 복구가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진행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3일 전까지 복구를 완료하라는 지시에 공사가 성급히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는 “포탄이 떨어져 완파된 집은 새로 지으면서 말끔해졌지만, 정작 그 주위의 집과 상가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며 “당시 폭발의 충격으로 여기저기 금이 갔지만 제대로 된 안전진단 없이 금간 부분을 에폭시 퍼티로 대충 메운 뒤 페인트칠만 하고 ‘복구됐다’고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정작 정부는 연평도 주민에게 돌아갈 예산을 오히려 줄여버렸다.

국회 신학용 의원실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행정안전부가 요구한 내년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 예산 250억여원 중 99억1000여만원만 반영하고 150여억원을 삭감했다. 이 중 노후주택 개량사업비는 행안부가 요구한 160억원 중 28억원만 반영됐다. 이에 따라 노후주택 개량 사업은 순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포격 때 6000만원이 저 망망대해에 버려졌지만 2000만원 보상이 고작”=주민은 정부의 불공평한 보상이 아쉽다.

수협에서 만난 선주 이모(70) 씨는 지난해 연평도 포격 후 한동안 출어를 못하면서 바다에 풀어놓은 꽃게 어망 4개를 잃어버렸다.

이 씨는 “하나에 1500만원씩 하는 다짜망(꽃게잡이망) 4개가 얼음에 다쓸려내려갔다. 개당 몇백만원씩 하는 부유통도 다 쓸려갔다. 하지만 어망 철거비라는 명목으로 2000만원 받은 게 고작”이라고 했다.

이 씨 외에도 40여척의 선주가 그날 어망을 풀어놓고 있었지만 정부가 주는 보상은 턱도 없다.

옹진군청 관계자는 “없어진 어망에 대해 증명하기가 어렵다”며 “선주에게 돌아가는 보상금은 마무리가 된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포탄의 직격은 피했지만 재산 손해를 본 집은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

시장통에서 낚시용품점을 하고 있는 채규루(47) 씨는 “전기가 2~3일 꺼지면서 수족관에 있던 물고기가 다 죽었다. 다하면 한 400만원 정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죽어버린 물고기가 감정평가가 힘들다는 이유로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옹진군청 관계자는 “150여가구가 입은 건설ㆍ기계 등의 물품 피해에 대해선 감정평가 후 보상을 했지만, 어획물ㆍ생어물 등은 평가가 어려워 보상이 되지 않은 걸로 안다”고 했다.

군가족은 보상금을 받지 못한다. 2년 넘게 연평도에 체류하고 있다는 군가족 김모(35) 씨는 “한마디로 군인은 무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공무원은 주소지에 관련없이 일괄적으로 150만원씩을 받았지만 군인은 보상금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상금 노리고 ‘전입신고’하는 얌체족도 극성=1년이 지나고 주민은 삶에 다시 적응하고 안정을 되찾아 연평도의 인구가 늘고 있다.

웅진군 연평면사무소에 따르면 실제 섬으로 전입신고된 인구는 폭격 직후 1748명에서 11월 2일 현재 1920명으로 170여명이 늘었다. 하지만 늘어난 주민은 보강된 병력과 군자녀 그리고 공사로 들어온 인부로 실제 거주인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게 주민의 말이다.

지난 2월부터 지급된 월 5만원씩의 정주금이나 연평도 주민에게 주어지는 배삯 등 여러 가지 혜택을 노리고 ‘얌체 전입’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면사무소 관계자는 “실제로 수백명의 사람이 전입신고를 하려 했지만, 혜택 때문에 허위로 등록하려는 사람이 있어 직권으로 말소처분한 것도 꽤 된다”고 귀띔했다.

연평도=박병국 기자/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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