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의 총탄 앞에서도 침착했던 캡틴으로서의 리더십과 병상에서 300일 가까이 벌인 생(生)을 향한 초인적인 사투는 결국 그를 지구상에서 가장 용감한 선원으로 세계가 인정하게 만들었다.
심각한 총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난 뒤에도 “회가 먹고 싶다”며 두둑한 배짱을 보였던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58) 선장은 세계의 눈이 한꺼번에 쏠린 자리에서도 담담했고 겸손했다.
석 선장은 2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해사기구(IMO) 총회장에서 에프티미오스 미트폴로스 IMO 사무총장에게서 ‘세계 최고 용감한 선원상(Exceptional Bravery Award
at Sea)’ 상장과 메달을 받았다. 그는 “납치와 구출작전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만을 생각했다”고 영어로 또박또박 소감을 밝혔다.
9개월간의 입원ㆍ재활치료를 거쳤지만, 양 다리의 상태가 정상 수준의 80~90%인 까닭에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어도 그의 기개는 여전했다. 석 선장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600여명의 인사들은 시상식장에서 상영된 피랍 당시 상황과 병원 후송, 회복 과정 등을 담은 영상을 오버랩시키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는 “세계 여러 해역에서 아직도 선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해적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데 대해 35년의 세월 동안 바다를 터전으로 삼아온 저로서는 두려움과 분노, 허탈감을 동시에 느낀다”며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해적퇴치에 적극 관여해달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시상식 뒤 인터뷰에선 좀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라고 운을 뗀 뒤 “하루 빨리 이 세상에서 해적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길 기원한다”고 했다. 아울러 해적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감시시스템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전문가적 시각도 피력했다.
구출 작전 중 청해부대원이 쏜 유탄으로 인해 치명상이 생겼다는 등의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그동안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건 당시 총알이 소나기 쏟아지듯했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선원들이 피해가 없었던 것 자체가 기적이다. 유탄에 의해 다친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작전에 의해 생긴 사고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죽음의 한 가운데서 스스로 걸어나온 ‘기적의 주인공’은 도량도 남달랐다.
169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엔 산하기구인 IMO는 지난 2007년부터 해상에서 인명을 구하고 해양오염 방지를 위해 특별히 노력한 개인이나 단체에 이 상을 주고 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