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인
청암이 꿈꾼 복지, 출발은 인본주의
뉴스종합| 2011-12-13 18:06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청암)이 그렸던 직장의 모습은 안정적인 생활조건을 마련해 우수한 인재가 마음 놓고 일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곳이었다. 이에 박 회장은 회사 창립초기 제철소를 건설하기도 전에 주택단지 부지를 마련할 정도로 적극적인 주거안정에 공을 들였다.

청암은 사원주택과 학교, 그 밖의 편의시설들을 모드 짓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직원들의 주택은 커녕 공장을 짓기에도 빠듯한 것이 당시 형편이기 때문. 그렇다고 여기서 돌아설 ‘철의 왕’이 아니었다. 그는 신용대출을 위해 직접 주요 은행들을 찾아다녔다. 번번이 거절을 당하기 며칠, 마침내 한일은행에서 20억원의 신용대출을 받게 됐다. 겨우 숨통이 트인 셈. 순간 고민의 시간이 다가왔다. 자금 조달도 불투명한데 이 돈으로 불쑥 사원주택을 지을 것인가. 그는 자신의 경영철학인 인본주의대로 밀고 나갔다. 



일단 결심을 굳히자 신속하게 부지 선정에 나섰다. 당시 만연했던 부동산 투기를 피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부지를 선정하고 일을 추진해야 했다. 출퇴근 거리, 단지 규모, 주거 및 자연환경, 교통편, 교육시설이나 각종 사회간접자본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 등을 고려했다.

결국 박 회장은 효자지구를 낙점했다. 효자지구는 쓸모 없는 야산에, 일부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공동묘지 때문에 부동산 투기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꺼림칙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을 타일렀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에 양지바른 야산 치고 묘지 없는 곳이 있던가?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상 명당을 찾아 묘를 쓰지 않나. 이곳은 명당이 틀림없어!” 



포항제철은 효자지구 66만㎡을 매입하고, 1968년 9월 10일 부지조성 공사에 들어갔다. 정부관료들은 “나랏돈으로 공장은 안 짓고 쓸데없는 짓 한다”며 공격했고, 언론들은 “포항제철이 제철소보다는 땅투기에 관심이 많다”고 매도했다.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맹공격을 퍼붓기도 했다.

박 회장은 여론의 뭇매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1차로 독신자를 위한 생활관(영일료)을 완공하고 사원주택과 함께 학교, 음악당 등 문화시설, 내빈 영접을 위한 청송대와 백록대 등을 차례차례 지어나갔다. 특히 청암은 사택보다는 자가주택 정책을 선택했다. 회사가 좋은 조건의 장기대여금을 지원해 ‘내 집 마련’을 도와준 것이다. 직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공동묘지가 들어서 있던 야산은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했다. 포항과 광양의 주택단지는 세계 여러 나라 주택개발 사업의 모델이 됐다. 박 회장의 판단대로, 주택문제가 해결되자 포스코는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인재들을 모을 수 있었으며, 높은 자부심과 애사심을 고취시킬 수 있었다.

정태일 기자/killpa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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