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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소사이어티 회원 10인 인터뷰 “기부는 국민의 제6의 의무” 둘러보고 나누며 건강한 부(富)를 키워가는 사람들
뉴스종합| 2012-01-26 06:38
이들은 재벌 2세가 아니다. 우리들 틈에 섞여 사는 장삼이사(張三李四)이다. 척박한 삶을 치열하게 개척해 가고 있는 우리 이웃이다. 오히려 지독한 가난을 겪으며 사회의 도움을 더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 개인 기부한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들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나서겠느냐”고. 기부를 ‘행복한 의무’라고 말하는 데 한 치 망설임이 없다.

물질만능주의를 넘어 ‘전염성 탐욕’(Infactious Greed)으로 병들어 있는 이 시대를 치유할 고순도 백신이다. 건강한 부(富)의 재정립 차원에서 헤럴드경제가 2012년 신년 아젠다로 풀어나가려는 ‘신(新)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 Oblige)의 전범(典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들과 동시대를 살고 숨쉬고 있다는 건 우리 모두에게 자랑스런 영예(honor)이다.

▶나누며 사는 그들의 소박한 이유=기부를 생활화해 온, 그래서 숨쉬며, 먹고, 자는 것 만큼 기부가 일상이 된 이들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봤다, “왜 기부를 하느냐”고.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돌아왔다.

진태준(71) 전 대진공업 대표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인지상정 아니냐”고 답했다. 박점식(57) 천지세무법인 회장은 “기부천사들을 보면서 내가 빚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성호(52) 신진파워테크 대표는 “불교 용어로 ‘보시’(布施), 널리 베풀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있었다”고, 김일섭(66) 한국형경영연구원장은 “불공평하게 부가 분배되는 현실에서 사회 환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소통과 화합, 공존공생의 의지도 있었다. 법무법인 서광의 김영갑(56) 대표변호사는 “소외된 이들을 도와주면 덜 외롭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회가 무시하지 않고 관심과 도움을 주고 있다는 연대의식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세살때 장애인이 된 류종춘(66)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부회장도 “기부를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먼저 나눔의 고리를 만들면 그 뒤를 이어 나눔을 실천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장덕흠(48) 신진씨엔테크 대표는 “나를 통해 우리집 아이들을 비롯한 후세들이 보고, 느끼고, 배워 기부를 실천하는 문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라고 말했다. 이충희(57) 에트로 대표는 “선생님인 아버지께 기부를 배웠다. 우리도 먹고 살기 어려웠는데 이웃에 나눔을 실천했던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밝혔다.

기부를 통해 오히려 본인이 행복하다고 이들은 말한다. 오청(46) 신선설농탕 대표는 “국방, 근로, 납세 등 국민의 5대 의무가 있지만 기부는 제6의, 또 다른 행복한 의무”라고 말했고 전 광무극장 대표인 구재서(83) 씨는 “기부를 한 뒤의 기분은 등산해서 올라선 산 정상에서 느끼는 뿌듯함과 같다”고 전했다.

▶나눔의 도화선은 주변에 있었다=이들의 거부할 수 없는 기부 본능에 불을 지핀 도화선은 멀지 않은 일상에 있었다. 오청 대표는 가족처럼 지내는 직원들로 부터 영감을 얻었다. 오 대표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템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많은 이들이 사회사업을 꼽았다. 형편이 좋지 못한 직원들이 나눔에 관심을 드러내 자극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굴곡진 삶 자체가 계기가 된 이도 있다. 구재서 씨는 “농촌에서 자라며 힘든 시기를 보냈고 6ㆍ25를 겪으면서 이만큼 살 수 있었던 것이 주변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 덕분이란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보답하자는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영갑 변호사는 높은 자살률에 자극을 받았다. 그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란 사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며 “이는 경제적 혜택을 골고루 받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했고 변호사를 개업하며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겨 본격적인 기부에 나섰다”고 답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어진 아내는 남편을 귀하게 만든다(현부 영부귀.賢婦 令夫貴)’는 격언처럼 이충희 대표는 “집사람이 재활원에서 장애인들 목욕 시켜주고 김치 담가주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당신은 몸으로 봉사를 안하니 돈으로 봉사하라’고 권유했다”며 공을 부인에게 돌렸다.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이들은 한결같이 “가진 사람의 덜 가진 사람을 위한 기부는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나누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이유도 없었다.

장덕흠 대표는 “나눔을 통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고 조성호 대표는 “돈은 물과 같아서 누구나 목이 마르면 시냇물을 떠 마시듯 그렇게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섭 원장은 “쏠리는 부를 사회에 환원시키는 건 가진 자들이 시장경제에서 가져야 할 시스템적인 의무다. ‘도덕적 책무’(moral obligation)를 생각해서라도 사회에 적극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점식 회장은 여러 재단을 통해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을 돕고 있고 오청 대표는 다문화가정의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데 나서고 있다. 류종춘 부회장에게는 장애인의 실질적인 소득개선이 과제다. 그는 “기부금이 취업이 안되는 장애인이나 월급이 10만~20만원 정도에 불과한 장애인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 2~3가지 장애가 겹친 이들에게도 배분이 잘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자활의 자양분이 되길 바라는 이들도 많았다. 이충희 대표는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교육 등을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덕흠 대표는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이 제3세계 국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에 나서게 하는 등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을 것”=과연 이들에게 기부의 끝이 존재할까? 기부에 대한 철학, 기부를 시작한 동기는 있었지만 그들에게 기부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구재서 씨는 “생활비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기부할 것이다. 힘 닿는데까지 나눌 것이고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고 조성호 대표는 “나눔은 삶의 목표다. 지속적으로 나눔을 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진태준 씨는 “검소하게 살면서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오청 대표는 “살아있는 한 지속적으로 기부할 것이고 생활 속에서 즐겁게 나누며 살아가는 의미의 ‘생애기부’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본받고 싶은 기부의 롤모델로 여러 선지자들이 꼽혔다. 김일섭 원장은 “따라갈 수 없지만, 유일한 박사는 기업하는 이유를 교육이라고 말했다.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셨는데 이런 분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집은 많은 이들이 롤모델로 꼽았고 세계적인 기부자로 유명한 빌 게이츠도 거론됐다. 본인도 어려운데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재산을 기부하는 무명의 기부자들도 닮고 싶은 분으로 꼽혔다. 재벌들의 기부 또한 순수성을 의심하지만 말고 칭찬해줘 더 북돋워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류정일ㆍ문영규 기자 @ryu_peluche>

ryu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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