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섭의 조각은 제작과정이 독특하다. 땅에 그림을 그리고 거꾸로(음각) 파낸 다음 거푸집으로 삼아 그 안에 돌과 시멘트 혼합재료를 부은 후 굳으면 이를 캐내는 방식이다. 그리곤 최소한만 매만져 작품을 마무리한다.
땅을 파고 캐냄으로써, 거푸집은 허물어져 버린다. 단 1점의 오브제를 찍어내고 수명을 다하는 셈. 그의 조각은 따라서 여러 점을 떠내는 여타 청동조각 등과 궤를 달리 한다. 또 땅 속에서 조각을 캐내는 행위는 일종의 아트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이같은 작업방식은 이영섭만의 독자적인 기법으로, 그를 ‘발굴작가’로 불리게 한다.
그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나온 최소한의 형상 안에서 처리되는 것이 묘미다. ‘거꾸로 파내기’는 꾸밈을 없애려는 의도적인 장치가 되곤 한다. 형태를 지우며 간신히 눈, 코만 남는 형상은 어눌하고 수줍어 더 매력적이다. 또 한발 물러서는 듯한 선들은 지극히 덤덤한, 민중의 초상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고유한 질감이 더해져 한결 넉넉하고 푸근하다.
전시에 나온 이영섭의 신작은 색(色)과 이미지가 한층 부드러워지고 풍성해졌다. 다양한 재료의 사용도 눈에 띈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 부산 바닷가에서 채취한 돌 조개 산호 모래 등 바다의 흔적을 사용해 바닷가의 추억과 동화를 살려내고 있다. 051-581-5647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