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토종 공룡 ‘점박이’ 태권브이 제꼈다
뉴스종합| 2012-02-10 15:29
영화 ‘점박이:한반도의 공룡 3D’ 제작 총괄 
민병천 올리브 스튜디오 대표

영화 ‘점박이:한반도의 공룡 3D’(이하 ‘점박이’)가 상영되는 극장 안, 스크린을 누비는 익룡(翼龍) 떼에 아이들 입이 쩍 벌어진다. 스크린 속 공룡이 포효할 때마다 아이들은 어깨를 움찔거리고 덩달아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점박이’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입소문을 타고 흥행 저력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26일 개봉한 ‘점박이’는 개봉 첫 주 36만6523명을 끌어모으며, 토종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 흥행작 ‘마당을 나온 암탉’의 첫 주 흥행 기록(33만5859명)을 넘어섰다. 2월 9일 현재 누적관객 수 69만8564명을 동원해 80만 관객을 코 앞에 뒀다. 역대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2위인 ‘로보트 태권브이’의 72만명을 넘어선 셈이다.

특히 100%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3차원(3D) 공룡 영화라는 점에서 궁금증이 밀려든다. ‘점박이’는 블록버스터 영화 ‘아바타’(2009) 열풍이 불기 전인 2009년 1월부터 작업을 시작해 3년여간 500여명의 스태프가 고군분투한 산물이다. 엄밀히 말하면 ‘아바타 3D’ 전에 ‘점박이 3D’가 있었던 셈이다.

“신비의 존재인 공룡을 입체로 만난다는 건 아이들에게 신랄한 충격이죠. 오직 입체 영상으로 공룡들을 스크린에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고집 하나로 ‘점박이’의 제작을 총 지휘한 민병천(43) 올리브 스튜디오 대표를 만났다. 

▶ “국내서 공룡영화? 회사 박차고 나간 직원도”=
지난 2008년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은 당시 EBS 평균 시청률의 3배에 달하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낳았다. 미국, 독일 등 8개국에 판매됐고, 독일의 방송사 슈퍼 RTL이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가에 구입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서 극장판 제작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다.

민 대표가 ‘점박이’의 극장판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전 직원이 반대하고 나섰다. 3D에 그것도 공룡 영화라니….

사업성이 검증되지 않은 데다 여러모로 위험 부담이 큰일이었다. 결국 의견이 갈려 회사를 박차고 나간 직원들도 있었다.

민 대표는 이미 방송 다큐멘터리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다. ‘공룡’이 아이들에게는 영원한 동경의 대상이라는 건 분명했다. 1편에서 우연찮게 공룡에게 붙인 ‘점박이’라는 이름이 토종 캐릭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반도의 공룡’이라니, 이런 영화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1편 제작비가 15억원 들었으니까 아무리 극장판이라도 40억원 정도면 되겠지 하고 쉽게 생각한 것도 있었죠.” 그는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그런데 촬영 기간이 자꾸 길어지면서 제작비가 당초 예상보다 배 가까이 더 들었습니다.”

주위에서는 어차피 애들 눈높이에 맞출 거면 제작비 20억~30억원 규모의 영화면 충분하지 않냐고 얘기했다. 민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들을 극장으로 데려오는 부모들이 만족해야 100만 관객 수를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작기간 3년, 스태프 500명, 제작비 80억원
= 2009년 1월부터 시작해 2012년 1월 개봉까지, ‘점박이’가 완성되는 데 꼬박 3년이 걸렸다. 스태프 40명이 월 200만원을 받는다고 계산해도 한 달 인건비만 8000만원이다. 제작비 80억원이 무리는 아니었다.

지난 2009년 7월, 점박이 팀은 두 달에 걸쳐 뉴질랜드로 현장 답사를 떠났다. 영화의 배경인 8000만년 전 한반도와 가장 비슷한 지형을 찾아 떠난 여정이었다.

신(神)의 관점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항공 촬영 장비인 ‘씨네플렉스’를 동원했다. 카메라를 헬기에 매달아 촬영해도 소음과 진동이 없도록 한 이 장비는 일일 대여료만 3000만원에 달했다.

민 대표는 제작비를 줄이자고 머릿속의 멋진 장면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최첨단 장비를 동원한 끝에 백악기 공룡들의 낙원을 무사히 담아낼 수 있었다. 또 캐릭터의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애니메트로닉스(Animatronics)’ 촬영 기법을 동원했다. ‘애니메트로닉스’는 애니메이션(animation)과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의 합성어로, 공룡의 실물 크기의 모형을 제작해 별도로 촬영하는 기술이다.

영화 초반 어린 ‘점박이’가 알에서 깨어나는 장면의 경우, 실물 크기의 로봇으로 재현하고 정교한 컴퓨터그래픽(CG) 기술로 합성해 명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수중 신이 가장 까다로웠다. 개봉 한 달 남겨둔 시점까지도 민 대표와 스태프들의 눈에는 출렁이는 물이 마치 비닐처럼 어색해 보였던 것.

개봉 직전에야 극적으로 만족할 만한 영상이 나왔다. ‘슈퍼맨 리턴즈’, ‘나니아 연대기’와 같은 걸출한 작품에 참여했던 노준영 KAIST 공학박사도 이미 구현했던 기술을 막상 국내 환경에서 적용하려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점박이’와 공룡 친구들은 마침내 100% 순수 국내 기술로 탄생했다. 짐 채빈 국제 3D협회 회장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 작업을 한국은 훌륭히 해냈다. ‘점박이’의 작품 수준은 월드클래스이다. 놀랍다!”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 “‘아바타’로 가는 길에 ‘점박이’가 있다
”= ‘점박이’는 국내 개봉 전에 이미 칸국제영화제와 아메리칸필름마켓(AFM) 등에 초청받아 해외 33개국에 선판매 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지난 9일(현지시간) 시작된 베를린 국제영화제 필름마켓을 통해서도 세계시장에 노크했다. 지금까지 공룡 영화에서 주인공은 티라노사우루스 정도였다. ‘타르보사우루스’라는 아시아 공룡에 해외 바이어들의 호기심이 동할 것으로 민 대표는 기대한다.

민 대표는 “‘점박이’는 한국 영화가 ‘아바타’로 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는 그런 것들을 시도조차 못 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3D 기술이라는 게 굉장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경험치로 움직이는 것이지 산술적인 게 아니다”며 ‘점박이’ 등에서 기술을 축적한 인력들이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민 대표는 벌써부터 후속탄 준비에 바쁘다. 이르면 내년 겨울에는 ‘점박이2’를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년간 축적한 기술이 2편을 통해서 펼쳐질 겁니다. 그간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잘 된 기술을 더 잘 되게, 안 되는 부분은 더 연구하면 되죠. 제작 기간이 단축되면 제작비도 1탄의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