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서 배우는 직장인의 성공과 몰락
‘만천과해’항우
덕 보다는 자만·의심만 가득
주변에 사람없고 늘 외로워
‘지록위마’모가비
사욕에 사로잡혀 야망만 커
늘 불안한 권력에 가슴졸여
‘불로불사’진시황
나를 따르지 않으면 곧 죽음
독선 때문에 아첨꾼만 양산
‘가치부전’유방
지방대 출신에 스펙도 없지만
탁월한 포용력으로 기업 승계
현대인에게 직장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낙타 바늘 귀’ 뚫듯 입사한 뒤엔 생존경쟁의 연속이다. 졸병인 신입사원은 대리, 차장, 부장 계급장을 거쳐 마침내 ‘별(임원)’을 달기까지 숱한 경쟁자를 물리친다. 수십년 동안의 장기전(長期戰)에서도 살아남아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면 그는 ‘샐러리맨의 신화’ 소리를 듣는다. 그만큼 인간의 능력만으론 되기 어렵다. 약간의 운, 본인만의 비장의 무기, 적절한 처세술이 뒤따라야 한다. 대한민국 99%의 샐러리맨은 그래서 각종 비즈니스 처세법과 리더십 관련 서적을 뒤진다.
요즘 SBS 월화극 ‘샐러리맨 초한지’가 ‘남녀 직딩’들에게 공감을 이끌며 인기다. 코믹한 인물과 대사, 감칠맛 나는 연출도 좋지만 무엇보다 드라마의 미덕은 2200년 전의 영웅들이 현대인에게 펼쳐 보이는 성공의 비책과 실패의 교훈이다. 극에 등장하는 손자병법의 36계와 사기(史記)의 고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전쟁터에서 통한다.
▶불로불사(不老不死ㆍ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진시황=지난 세대에나 통했던 ‘강압적’ 리더십의 전형이다. 내 말은 항상 옳으며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곧 ‘죽음’(사직)이다. 무리를 이끄는 강력한 카리스마는 속전속결이 필요한 고도성장기와 턴어라운드 기업에는 통하지만, 조직이 안정된 다음엔 주변에 아첨꾼과 배신자만 양산할 뿐이다. 중국 천하통일을 이룬 진나라의 생명이 짧았던 이유는 리더십의 부재였다.
▶가치부전(假痴不癲ㆍ어수룩함을 가장해 상대를 안심시킨다) 유방=‘듣보잡’ 지방대 출신에 스펙(Spec)도 형편없다. 그러나 마음만은 풍요롭다. 극중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유방(이범수 분)은 “제일 나쁜 경영자는 ‘지’만 잘난 줄 알고 ‘지’가 다 하는 인간이유. 자발적이게끔, 사람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게 진정한 경영자유”라고 설파한다. 그는 카리스마는 “똥폼”이라고 정의한다. 그의 최대 장점은 상황에 따라 수그릴 줄 아는 융통성과 사람을 믿고 쓰는 ‘용인술(用人術)’이다. 중소업체 ‘팽성실업’의 인력을 그대로 승계하고, 자신에게 투항해온 한신도 포용한다. 조금 부족한 그를 위해 사람들은 스스로 수족이 되기를 자처한다. 시작은 초라하나 끝이 창대하다.
▶만천과해(瞞天過海ㆍ하늘 속여서라도 바다를 건널 때) 항우=역사 속 항우는 초나라 때 여러 장군을 배출한 명망가 출신이다. 샐러리맨으로 치면 스탠퍼드 MBA, 4개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치 최고 단계다. 항우(정겨운 분)는 “경영자의 자격 요건은 바로 능력이다. 무조건 부하보다 뛰어나야 한다. ‘덕장(德將)’이란 카리스마 없는 놈들의 포장술이다”라고 주장한다. 항우는 초고속 승진하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 배경엔 앞뒤를 재지 않는 추진력이다. 그러나 지나친 자부심과 의심 많은 그는 외롭다.
▶두주불사(斗酒不辭) 여치=진시황의 외손녀 백여치는 술이 세다. “죽음도 불사하지 않는데 어찌 술을 사양하겠는가”라고 말한 이는 고전에선 유방을 따르는 번쾌지만, 극에선 여치의 성격으로 표현된다. 거칠 것 없이 자란 ‘오너 딸’의 최대 장점은 이런 근성이다. 이는 진시황 사후 나락으로 떨어지면서도 ‘와신상담’할 수 있는 힘이다.
▶지록위마(指鹿爲馬) 모가비=지략이 뛰어나고 야망도 크다. 하지만 본래 성정이 악하고 사리사욕에 치우쳐 대중을 품지 못한다. 모가비는 중역회의에서 사슴 그림을 가리키며 “저 말 그림은 누가 걸어놨냐”며 임원들의 충성심을 떠본다. 상대의 두려움을 바탕으로 이뤄진 그의 권력은 불안하다.
이 밖에 ‘관관상호(官官相護ㆍ서로의 허물이나 잘못을 감싸며 서로 돕는다)’하자며 이리 붙고 저리 붙는 범증, ‘장계취계(將計就計ㆍ상대의 계교를 알아채고 그것을 역이용한다)’의 스파이 노릇을 하는 한신 등도 직장 내 어느 조직에나 있을 법한 인물 유형이다.
드라마는 샐러리맨 성공 비결로 진정성과 패기, 위기에 강한 유연성에 방점을 둔다. 이는 최근 삼성, GS 등 대기업들이 인사채용 시스템에서 학력과 출신을 따지는 틀에 박힌 채용방식을 버리고 인성, 직무검사를 강화하는 추세와도 일맥상통한다.
취업사이트 인크루트 관계자는 “소비 시장이 급변하고 통제가 불가능한 경영환경이 되면서 기업은 돌발상황에도 적절히 처신할 수 있는 인재를 선호한다”며 “조직 리더 또한 적재적소에 다양한 인재를 유연하게 써야 강한 조직문화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한지숙 기자 @hemhaw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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