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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2012-03-08 11:17

태초에 빚이 있었고 인간은 세 종류가 있었다. 빚진 자와 빚 준 자, 그리고 빚 받는 자들이다.

현대의 아담은 빚으로 창조됐으니, 그의 갈비뼈가 곧 빚이라. 부모가 대출받아 사거나 임대받은 집에서 태어나 ‘등골’을 빼 지은 ‘노페’로 몸을 가리고 학자금을 ‘융자’받아 배움을 다할지니 힘써 ‘알바’로 갚음하리라. 아담의 후손들은 대출과 융자의 축복으로 대를 이으리니 태내로부터 빚으로 빚어진 부모의 DNA와 갈비뼈를 물려받게 되리라.

무릇 만물과 생명을 주관하시는 현대의 유일신은 물신(物神)이니 곧 자본, 그중에서도 거룩한 금융자본이라. 그는 우리에게 빚을 거래할 자유를 주었으니 ‘신용’이야말로 신의 언어이자 논리이며, ‘약관’은 성전이고 ‘이자’는 제단에 바치는 속죄양의 피리라. ‘투자’는 생명이고 ‘파산’은 죽음이라.

은행과 증권, 보험, 투자신탁, 신용카드사 등이 ‘연체’와 ‘파산’을 최고의 형벌로 내리는 정통의 신이라면 사채는 ‘신체포기각서’와 ‘인신매매’를 극형으로 하는 사교 혹은 이단의 교주들이다. 우상숭배로 사탄의 유혹에 빠진 이들은 평생 뱀에게 뒤꿈치를 조심할지라. 뱀은 불법 사채를 독촉하는 채권추심인이라.

한국영화는 구원받지 못한 현대인들의 수난사를 기록해왔다. ‘푸른 소금’의 신세경은 사채업자에 쫓겨 권총을 잡았으며, ‘잔혹한 출근’의 김수로와 이선균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때문에 유괴범죄에 나선다. ‘김씨표류기’에서 신용카드사의 빚독촉 전화에 쫓겨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한강의 무인도로 떠밀려갔던 정재영은 ‘카운트다운’에선 채권자를 대리해 빚을 받으러 다니는 냉혹한 채권추심인으로 원래 자리의 반대편에 선다.

‘오직 그대만’의 소지섭의 전직 또한 잔인한 채권추심인으로서 가련한 가장을 생사의 갈림길로 몰아넣었고, ‘똥파리’의 양익준도 가차없는 폭력으로 빚쟁이들을 다그친다. 김기덕 감독이 새롭게 착수한 영화 ‘피에타’에서는 이정진이 사채업자를 대리해 돈을 받으러 나선다.

변영주 감독, 이선균ㆍ김민희 주연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화차’에도 깊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은 바로 채무자가 주인공인 ‘지옥도’의 풍경이며, 그 속에서 빚진 여인의 수난사, 개인파산의 연대기가 펼쳐진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채와 연좌제보다 무서운 보증의 고리, 헤어날 수 없는 절망과 가난의 수렁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의 이름과 신원은 모두 가짜였으며 다른 여인의 삶을 도용한 것이었다.

두 여인의 삶, 원본과 복사본 모두에 드리우고 있는 죽음의 풍경은 을씨년스러운 한국 사회의 거울이다. 데칼코마니 같은 두 여인의 삶처럼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 소설에서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가 꺼진 일본 사회는 20년 후 한국 사회의 한 극단에서 펼쳐지는 지옥도와 절묘하게 겹쳐진다. 과연 빚진 자들에게 구원은 없는 것일까. ‘화차’는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을 향해 달리는 불수레를 뜻한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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