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샌프란시스코 법정 아닌 장외서 비밀회동
양사 간 오간 내용은 철저히 함구 속 합의 가능성 높지 않을 듯
내달 본안소송 전 협상 마치라는 게 미 법원 취지
삼성 침해 결론 땐 미 ITC 삼성제품 수입금지
[헤럴드경제= 정태일 기자]지난해 4월부터 시작돼 13개월간 끌어온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이 양사 CEO의 만남으로 최대 전환점을 맞고 있다. 평행선을 달리며 양사 모두 잇단 패소로 명분과 실리 모두 잃고 있는 가운데, 이번 협상으로 실마리가 풀릴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타협에 이르는 결정적 묘수는 나오기 힘들 것이란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어 내달로 잡힌 본안소송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21일 오전(현지시간) 직접 대면해 대화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당초 협상 장소로 알려진 미 캘리포니아 북부지법 샌프란시스코 법원청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에 양사 CEO가 로펌(법률회사) 등 법원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만나 합의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양측이 합의장소를 법원이 아닌 다른 장소로 해줄 것을 법원에 요청하고 중재하는 판사가 이를 허락할 경우 장소를 변경할 수 있다.
두 CEO가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흘러가는 정황 상 특별한 대안이 나오기 힘들다는 데 무게가 쏠리고 있다. 한미 특허전문가들은 이번 만남의 성격이 실제 타협점을 찾기보다는 법원 명령을 어길 경우 향후 심리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모션’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양측의 주장이 어느 한쪽에 치명적일 정도로 강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뒤흔든 특허전쟁 승자는 누구인가’의 저자 정우성 변리사는 “반도체처럼 부품 관련 특허라면 완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한쪽이 접고 들어가게 되지만, 완제품끼리의 대결에선 결정적 주장이 약하기 마련”이라며 “애플 디자인 특허침해 주장을 삼성이 피해갈 수 있고, 삼성 통신기술 침해 주장을 애플이 표준특허란 명분으로 맞설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 변리사는 “이번 건은 비단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소송 뿐만아니라 애플이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을 상대로 싸우는 것으로 HTCㆍ모토로라와도 같은 내용으로 소송 진행 중인데 삼성하고만 합의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 특허변호사들도 단기간에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스티븐 헨리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단 이틀 만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만남은 판사가 양측에 비즈니스적 판단을 가미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해결책이 나오기까지 양측은 서로 더 거센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나아가 내달 시작될 본안소송에서 삼성이 패소할 경우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이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 ITC(국제무역위원회)는 미국 특허를 침해한 기업을 상대로 수입을 금지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실제 ITC는 지난달부터 HTC의 안드로이드폰이 애플의 데이터 탐색기술 관련 일부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판정내리고 통관 과정에서 기술 침해 여부를 확인 심사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미 재판부는 삼성과 애플이 본안소송 전에 타협점을 찾으라고 기회를 준 셈이다. 마크 렘리 스탠포드 로스쿨 교수는 “재판부가 이번 CEO 만남을 통해 협상을 독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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