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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만 모르는 경제위기…이유는 ‘완충장치 트로이카’
뉴스종합| 2012-06-14 20:15
[헤럴드생생뉴스]전 세계가 걱정 어린 시선으로 스페인을 바라보고 있지만, 정작 위기의 당사자는 심각할 정도로 낙관적이다.

스페인 현지에서는 은행 부실이나 구제금융 영향 등 경제 문제보다는 4년 만에 돌아온 유로2012 축구대회가 더 큰 관심사다. 구제금융 신청을 국가적 수치로 여기긴 하지만 시위라고 해야 주말에 수십명이 산발적으로 모이는 게 고작이다.

스페인 경제는 14일(현지시간) 전날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발표의 영향으로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장중에 구제금융 위험선인 7%를 돌파하는 등 위기 징후가 고조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하지만 정부 관료와 경제전문가들은 여전히 위기 인식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이끄는 정부는 은행 및 재정 연합으로 유로존 시스템을강화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원인을 밖으로 돌리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도 “스페인 경제가 더 크게 무너질 가능성은 없다”며 거들고 있다.

이번 구제금융이 미봉책에 불과해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국제 시장의 평가와는 인식이 판이하다.

주스페인 한국대사관 노원일 경제담당 서기관은 “도무지 구제금융을 신청한 나라 같지가 않다”며 “스페인 상황에 대한 국제시장의 진단이 비관적인 데 비해 스페인 내부의 시각은 지나칠 만큼 관대하다”고 말했다.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는데 당사자만 모르는 경제위기 불감증에는 스페인 경제 특유의 배경이 깔려있다.

가족주의와 지하경제, 사회보장제라는 ‘완충장치 트로이카’가 그것이다. 스페인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는 3요소는 정부로서는 세수를 축내는 골칫거리기도 하지만 경제위기의 완충장치로 기능하는 역설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청년실업률이 50%나 되는 상황에서 스페인의 가족주의는 그 어떤 실업대책보다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집안에서 누군가 직장을 잃으면 부모가 지원하고, 이마저도 어려우면 친인척들이 생활비를 모아준다. 부동산 거품 붕괴로 집값이 반 토막 나자 따로 살다가 부모 품으로 돌아가는 ‘캥거루족’이 크게 늘었다.

통계에 잡히진 않지만 상당수 실업자가 관광 및 서비스 분야에서 가족의 일을 도우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코트라 마드리드 무역관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돈벌이는 하고 있으니 당사자들의 불만이 쌓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GDP의 20% 수준에 이르는 스페인 지하경제는 가족주의적 요인과 맞물려 실직자들의 고용을 책임지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공식 실업률이 8%면 사실상 완전 고용상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러한 지하경제는 GDP의 14.8%에 이르는 관광산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이 큰 축을 이룬다. 대기업과 부유층이 지하경제를 차지하는 비율이 70%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불법이주자들도 지하경제의 일정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한 완충기능을 한다지만 정부로서는 이런 상황이 달가울 수 없다.

지하경제는 세수를 좀 먹는 정책운용의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정부는 긴축 재정뿐만 아니라 지하경제도 적발해야 하는 이중고에 빠진 셈이다.

전인구의 90%를 커버하는 사회보장제도를 보면 국민이 왜 경제위기에 둔감한지 짐작할 수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은퇴하면 은퇴 전 15년 평균급여의 85%를 연금으로 받는다. 15년만 일해도 평균급여의 50%가 연금으로 나온다.

직장처럼 보너스를 더해 1년에 14개월치 연금이 지급된다. 조기 퇴직도 허용되고 당사자가 죽으면 배우자나 자녀가 전액을 이어받는다.

이런 급여율은 그리스에 이어 유럽 2위 수준이다.

지난해 연금개혁 조치로 퇴직 정년이 65세에서 67세로 늘었지만 60세 이상 근로자에게 출근하지 않아도 월급을 주는 기업이 아직도 존재한다. 학비와 의료비는 물론 공짜다.

실직하면 최대 24개월, 매월 1천400유로의 실업급여를 주는데 이를 악용하는 부정수급자들이 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전체 공공지출에서 사회보장 관련 비용 66%를차지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공공부문 인력 감축 등을 통해 올해 정부지출을 270억유로 줄인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달성 전망은 밝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위기가 심화돼 완충기능이 한계점에 이르면 스페인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밝혔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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