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멜로물은 평범하거나 가난한 여주인공이 멋있고 능력있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신데렐라 드라마다. 남녀 위치가 바뀌어 별 볼일 없는 남자와 부잣집 여자의 사랑을 그리기도 하지만 기본 구도는 잘 바뀌지 않는다. 이 구도가 식상해지자 아예 시간과 공간을 다르게 설정해 시간을 뛰어넘는 남녀 사랑(타임슬립)을 그리기도 한다. ‘아이두 아이두’는 이 두 가지 중에서 표면적으로는 후자에 가깝지만 기본적으로 사랑에 의한 신분 상승 드라마가 아니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주인공 황지안(김선아 분)은 어렸을 적부터 구두가 좋아 한영어패럴에 입사해 각고의 노력 끝에 이사 자리에까지 오른 30대 후반의 구두디자이너다. 말자하면 구두업계의 유재석이다.
하지만 성격은 유재석보다 훨씬 더 까칠하다. 딱 부러지는 말투, 불도저 같은 추진력,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하이톤 히스테리. 일로 인정받으려 하다보니 성격도 직선적이고, 독하다는 인상을 줘 동료로부터 ‘메두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까칠한 면은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민폐녀’가 아니어서 반갑다. 그녀는 아버지의 칠순잔치에도 일 때문에 제때 참석하지 못해 가부장적인 아버지로부터 냉대를 받아야 했다.
슈어홀릭인 황지안은 얼핏 보면 ‘섹스앤더시티’의 캐리처럼 화려한 삶을 사는 캐릭터로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지안은 30대에 대기업 구두 브랜드의 이사 자리까지 올라간 능력있는 여자로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한국에서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살아남기 위해 일과 삶 한 가운데서 고민하는 2030 직장 여성의 모습을 지안을 통해 볼 수 있다. 일에 미쳐 사는 노처녀 커리어우먼의 비애를 잘 그려내고 있다.
▶황지안은 로코의 새롭고 현실적이고 개척하는 캐릭터다
지안 캐릭터의 특성은 짝퉁 구두를 팔다 지안 회사에 갓 입사한 박태강(이장우 분)과 술김에 하룻밤을 보낸 후 덜컥 임신하면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지안의 커리어에 중대한 걸림돌로 다가왔지만 그녀는 일뿐만 아니라 사랑과 인생설계에서도 정공법을 택하는 돌직구녀다.
지안은 집안의 성화에 못 이겨 선을 본 산부인과 의사 조은성(박건형 분)에게 임신사실을 알리고 결별을 통보한다. 그리고는 아기 낳을 준비를 한다. 대책없는 모성애로 무조건 아기를 낳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과 구두밖에 몰랐던 알파걸 지안이 자신 안에 새로운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특히 여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모성으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모성애를 발견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엄마라는 새로운 지위를 더하기로 결심한 지안의 선택에 시청자가 공감했다. “뻔한 여자=모성 설정이 아니라 지안에게 좀더 몰입할 수 있었다” “조금씩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며 내적으로 단단해져 가는 지안의 모습을 응원한다” “지안이라면 커리어우먼과 엄마 역할 모두 잘 해낼 것 같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지안은 회사 내 경쟁자인 부사장 염나리(임수향 분)와도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지안은 염나리의 양어머니이자 회사의 오너인 장여사(오미희 분)로부터 사장직 제의를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안은 “아이아빠 없이 혼자 키우겠다”고 하자 장여사는 “여긴 구두회사다. 환상을 파는 곳”이라며 “그런데 미혼모라니. 불행의 아이콘을 사장 자리에 추대할 수 있겠어”라고 말했다. 이에 지안은 “사장 자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김선아의 로코는 유쾌하지만 짠하다
어쩌면 일생일대에 한 번도 오기 힘든 절호의 기회인 사장이라는 자리를 포기하는 지안은 비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의 갈림길에서 안전한 길이 아닌, 어쩌면 옳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는 길을 가면서 세상의 편견과 자신의 한계와 싸우면서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하는 지안에게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일평생 가족과 남편을 위해 살림만 하며 살아온 지안의 엄마인 오미연은 “네(지안)가 부러운 이유는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라, 네 스스로 너의 인생을 개척하잖아”라고 말한다.
김선아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변주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김선아라는 이름 자체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일컫는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그래서 시청자의 캐릭터 몰입도를 한층 높여준다. 이는 이미 ‘내 이름은 김삼순’ 때 증명됐다. 정치에 대해선 눈꼽만큼도 관심없던 말단 공무원에서 최연소 여시장으로 거듭나는 미래(시티홀)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뒤늦게 삶의 의미와 사랑을 찾아가는 연재(여인의 향기)까지 김선아는 각 캐릭터의 고민과 행복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김선아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극 중 모든 캐릭터의 희로애락을 완벽히 표현해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것. 시한부 인생을 사는 집안의 가장과 편부슬하의 콤플렉스 덩어리 30대 싱글녀의 인생을 무겁지 않고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내 시청자를 웃고 울게 했다.
‘아이두 아이두’에서도 김선아는 일이 인생의 전부였던 잘나가는 슈퍼 커리어우먼이 사회적 통념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싱글맘’으로서의 삶을 두고 고민하는 캐릭터 황지안을 코믹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터치로 그려내며 시청자의 가슴을 슬프게도 만들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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