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재벌개혁, 여야 갈수록 비슷... 재계 믿는 도끼에 발등찍혔다
뉴스종합| 2012-07-11 10:04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민주통합당이 재벌개혁의 핵심으로 삼성ㆍ현대 등 대기업 집단의 기존 순환출자를 3년 안에 모두 해소토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한데 이어 10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경선 후보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시키겠다”고 밝혔다. 자칫 중견기업의 성장은 물론, 기존 대기업 집단의 존립마져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정책이지만,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에게 재계의 우려는 ‘쇠귀에 경읽기’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성향인 박 후보마저 좌클릭하자, 재계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는 반응이다. 특히 재계는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재벌정책이 갈수록 비슷해지는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정치권 ‘재별 규제’는 유행=대선을 목전에 둔 정치권에 ‘재벌 규제’나 ‘재벌 개혁’ 같은 단어는 유행이다. 유행을 넘어 반론조차 제기할 수 없는 당위적인 과제가 됐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재벌 규제의 명분은 여야 모두 서민, 즉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 보호다. 중소기업 고유 업종을 한층 강화하고, 일방적인 하도급 단가 인하를 제한하며, 공공부분 입찰도 대기업 계열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 같은 정책에는 “누가 여당이고 누가 야당인지” 알기 힘들 정도다.

지난 4ㆍ11총선 직후까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재벌정책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새누리당은 대기업 집단을 인정하면서 불공정한 시장 경쟁 질서를 바로잡는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 5월 말 새누리당이 발표한 ‘공약 실천 제1차 12대 법안’을 보면 정기적인 내부거래 실태 조사를 통해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하고, 중소기업이 시장을 66% 이상 지배하는 업종에 대해서는 대기업의 신규 진출 자체를 금지시켰다. 또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한 하도급 단가를 부당하게 인하했을 경우, 그 금액의 몇 배를 물어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도입했다. 대기업 총수와 임원의 직무 관련 범죄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도 어렵게 만든다는 방침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우리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의 근원을 대기업 집단으로 보고, 재벌 자체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대기업해체 발상‘이라는 반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이 최근 제출한 9개 재벌 관련 법안에는 ▷출자총액제한제도 재도입 ▷대기업 순환출자 금지 및 기존 순환출자 3년 내 의무적 해소 ▷금산분리 강화 등이 들어 있다. 삼성이나 한화그룹처럼 총수 중심의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제조업과 금융업 계열사간 지분이 뒤섞여 있는 몇몇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을 분명하게 타겟으로 삼은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야 차이점은 사라진다=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1일 박근혜 후보의 과거 줄푸세 발언과 김광두, 현명관 등 몇몇 관련 인사의 실명을 언급하며 “말은 경제민주화지만 내용은 재벌 보호”라며 새누리당 및 박근혜 후보의 재벌 정책과 차별성 부각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그나마 남아있던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재벌 정책 차별점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박근혜 후보가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대목이 대표적인 예다. 그동안 새누리당이 도입을 거부했던 순환출자 문제에 대해 ‘신규’라는 꼬리표를 붙였지만, 사실상 민주당의 당론을 수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에 박 후보 캠프 일각에서는 연기금 주주권 행사 강화, 자본소득 과세 강화안 등을 예고하기도 했다.

또 새누리당 내 소장ㆍ쇄신파 및 일부 친박계 경제통 의원들이 제한적인 출총제 및 순환출자금지제도 부활을 주장하고 있는 점도 변수다. 쇄신파인 남경필 의원과 이혜훈 최고위원 등은 최근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해야 한다” 또는 “기존 순환출자도 단계적으로 의결권을 제한하자”고 언급한 바 있다.

이 같은 정치권의 재벌 때리기에 대해 재계 관계자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 고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를 위한 수단으로 추진된다면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지속가능하고 실현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방법을 차분히,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정치 논리에만 입각한 재벌 개혁에 대해 걱정했다.

최정호 기자 /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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