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1번지
달러·장외주식까지 상납설 … 밀실 공천이 참극 부른다
뉴스종합| 2012-08-03 11:26

100달러로 가득채운 경조사 봉투
은행 특혜 대출에 차용증서까지…
공천 헌금 논란때마다 단골로 등장

시스템 공천은 말뿐…‘비례대표=헌금’여전
제도적 보완보다 마인드 바꿔야
공천과정 기록 남기는 獨방식 배울만


‘케이크 상자, 인삼 보따리, 백만원짜리 수표와 100달러 지폐로 가득 채운 경조사 봉투, 장외 주식거래와 은행 특혜 대출, 그리고 차용증까지….’

그동안 우리 정치사에서 ‘공천 헌금’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나왔던 단골 소재다. 국회의원이 되고픈 자들은 실력자들에게 포장지로 둘러싼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돈을 건네고, 선거철 돈 한 푼이 아쉬운 실력자들은 이런 돈을 기꺼이 받아쓰곤 했다.

‘돈 안쓰는 선거, 깨끗한 선거’가 공감대를 얻기 시작한 최근 10여 년 사이에도 공천 헌금 논란은 단골로 불거졌다. 은밀한 현금 봉투부터, 특별 당비로 가장한 돈 상자까지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가는 공천 헌금은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우리 정치의 일상사가 됐다.

▶공천헌금 논란의 역사=18대 대통령선거를 4개월여 앞둔 3일 새누리당은 현기환 전 공천심사 위원과 비례대표로 당선된 현영희 의원 간 돈이 담긴 ‘쇼핑백’을 주고받았다는 의혹 수습에 여념이 없다. 총선에서 신승하며 쇄신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아왔던 당과 대선주자들의 입지가 이번 사건으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금 와서 당사자들을 출당시킨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검찰에 조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 외에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터질 것이 결국 터졌다”는 자조섞인 반응도 나왔다. 10여 년 전부터 선거법을 강화하고, 관련자를 엄벌했지만, 끊이지 않았던 공천헌금이 19대 총선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의 공천헌금 파문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 18대 국회의 친박연대가 꼽힌다.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한 친박계 의원들이 뭉쳐 만든 친박연대는 14명의 의원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비례대표 1번이던 30대 양정례 당선자가 특별당비 1억원과 차용금 16억원 등 모두 17억원을 당에 건넨 것으로 알려지면서 결국 당 대표와 당선자 모녀가 구속되는 참극으로 종결됐다.

또 비슷한 시기 창조한국당에서는 공천과정에서 이한정 후보에게 당채를 사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합법적인 채권을 가장했지만, 결국 검찰과 법원은 당선과 공천을 무기로 한 뒷돈으로 판단했고, 당 대표와 당선자는 의원직이 박탈되고 말았다.

19대 총선 과정에서도 공천헌금은 도마에 올랐다. 총선 직전 한명숙 민주당 대표의 한 측근이 공천을 대가로 1억원의 뇌물을 받은 것. 이 사건으로 심상대 전 사무부총장은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공천은 권력이다” 마인드를 바꿔야=정치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공천헌금 구태의 해결책은 정치인들 스스로가 마음을 고쳐먹는 것밖에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조언했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비례대표라는 자리가 금전적인 기여도에 따라 배분이 되는 자리로 잘못 인식이 되면서, 관행으로 굳어진 결과”라며 “정치 윤리 문제로 접근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미 정치자금법과 관련 판례 등을 통해 공천헌금을 제한하고 있는 만큼, 제도적 보완보다는 정치 문화의 개혁이 답이라는 것이다.

서경교 한국외대 교수도 “비례대표 공천에 대한 성의표시가 정치권에서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제도적 장치가 있음에도 또다시 문제가 드러난 만큼, 정치인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와 관련해서 돈이 무섭다는 점을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인식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금과 같은 밀실 공천 관행의 개선만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정당의 공천과정을 세밀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이를 선관위에 제출해 공개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현재 사학재단이 이사회의 모든 과정을 녹음해서 제출하듯이 독일처럼 정당의 공천과정을 기록해 선관위에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번 19대 국회에서도 정치권은 “시스템 공천으로 공천장사가 사라졌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최정호 기자ㆍ김수경ㆍ손수용ㆍ이유정 인턴기자>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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