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술관 건립 안병광 유니온약품그룹 회장
이중섭 작품 주제 첫 개관전 뿌듯
“약을 팔기 위해 30년 전부터 병원을 드나들었는데 내가 만난 사람들은 늘 찌푸린 모습이었어요. 아픈 사람들을 상대하니 그렇겠죠. 그들에게 예술을 가까이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굳었던 마음이 부드럽게 녹을 테니 말이죠.”
안병광(54) 유니온약품그룹 회장은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컬렉터다. 한국 근ㆍ현대미술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해 온 그는 이중섭의 대표작인 ‘황소’를 지난 2010년 경매에서 35억6000만원에 사들이는 등 이중섭의 작품 30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또 한묵 박고석 남관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수집했다. 그가 그간의 컬렉션을 일반 대중과 향유하기 위해 서울 부암동에 서울미술관을 설립했다.
오는 29일 개관하는 서울미술관은 사립미술관으로는 삼성미술관 리움 다음으로 큰 규모(전시면적 500평)로, 미술관 뒷편에는 조선 말기에 지어진 흥선 대원군의 별장 석파정(1만3000평)이 연결돼 있다.
안 회장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연매출 3000억원에 육박하는 의약품 유통업체 유니온약품그룹을 일으킨 기업가다. 요즘도 마음만은 여전히 ‘현장을 누비는 영업맨’이라는 그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소나기 때문이었다.
“1983년이었어요.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서울 명동의 성모병원을 찾았다가 갑작스런 소나기를 만났어요. 병원 옆 액자가게 처마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있는데 ‘황소’ 그림이 눈에 들어오는 거에요. 그래서 수중의 돈을 탈탈 털어 7000원에 샀습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은 그림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주며 “이 그림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복제 프린트”라며 귀뜸했다고 한다. 안 회장은 아내에게 그림을 내놓으며 ‘언젠가는 진짜 황소 그림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시작된 이중섭과의 인연은 1987년 시인 구상 선생과 이웃이 되면서 더 깊어졌다. 구상 선생은 만날 때마다 이중섭 이야기를 들려줬고, 안 회장은 그 생애에 감동을 받아 발품을 팔아 이중섭 그림을 구입했다. 특히 ‘황소’가 경매시장에 나왔을 땐 앞뒤 생각 않고 낙찰받았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게 된 안 회장은 이에 머물지 않고 미술관을 설립해 소장 중인 작품들을 일반에 공개하게 됐다.
“이제 미술관을 만들고 개관했으니 그림들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전시를 통해 서울을 대표할 만한 미술관으로 키워야죠. 석파정이라는 문화재와 현대미술이 공존하는 곳이니 더 특색있지 않을까요.”
서울미술관의 초대 관장은 미술평론가이자 저술가인 이주헌(51) 씨가 맡았다. 개관전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는 11월 21일까지 열린다.
글ㆍ사진=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