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굴리고 끌고 찌그러뜨린 예술…고정관념을 뒤엎다
라이프| 2012-09-04 09:53
조각가겸 설치미술가 이승택
쥐조각 등 반골에너지 모태로
기성가치 도전 80여점 선보여

아이웨이웨이 등 6인의 작가
설치·회화·사진·영상 등 통해
사회 부조리·모순점 반추


요즘 세계 현대미술계는 ‘생각하는 미술’이 대세다. 물론 대부분의 관람객은 잘 그린 그림, 아름다운 그림을 보길 원한다. 하지만 당신이 조금이라도 앞서 가는 창의적 인재라면 그런 고정관념은 벗어던져야 한다. 백남준이 ‘예술테러리스트’를 자임한 이래 미술계에는 별별 전위적 작가들이 다 쏟아져 나오니 말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독특한 개념미술전 두 곳을 찾아가 봤다.

▶성곡미술관을 휘감은 이승택의 반골 에너지=서울 신문로의 성곡미술관 전관에 쩌렁쩌렁한 기운이 감돈다. 올해 여든에 접어든 조각가 겸 설치미술가 이승택이 ‘날 선’ 작품들로 회고전을 꾸몄기 때문이다.

‘이승택 1932~2012: Earth, Wind and Fire’라는 타이틀로 개막된 전시는 평생 주류와 타협하지 않고 남다른 개념미술을 선보인 이승택의 지난 60년 궤적을 살필 수 있는 자리다. 모두가 ‘예’할 때 혼자 ‘아니오’라고 반기를 들며, 일평생 실험적 예술세계를 구현했던 이승택은 이번에 대형 설치작업 20여점과 조각ㆍ회화ㆍ도자ㆍ사진 등 80여점을 내놓았다. 

현대 개념미술은 난해하지만 제대로 곱씹어 보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중국의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의‘ 258 Fake’. 최근 10년간 블로그에 올렸던 사진 7682장을 통해 중국 공산주의의 유물적 유령을 조명한 작품이다.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이승택은 대학 시절부터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그의 작업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1957년에 발표한 ‘소불알’이 대표적이다. 나무를 소의 음낭 형태로 만들어 작은 액자에 줄줄이 매단 이 작품은 ‘오뉴월에 소불알 떨어지기만 기다린다’는 속담처럼 치열한 작가정신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예술가들의 행태를 꼬집고 있다.

이승택은 바람ㆍ불ㆍ연기ㆍ대기 등 눈에 잘 안 보이는 ‘비물질적인 것’에도 주목했다. 갑갑한 실내를 떠나 드넓은 대지에서 대형 천을 흩날리거나, 고인돌에 링거를 줄줄이 매달면서 우리 고유한 문화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상황을 개탄했다.

안전한 길을 마다한 채 춥고 배고픈 비주류의 길을 걸어온 이유는 뭘까. 그는 “원래 제가 반골기질이 좀 있어요. 고정관념을 뒤엎었더니 작품이 절로 나오더만요.” 10월21일까지.

▶갤러리현대, 유령을 전시장에 불러들이다?=갤러리현대(대표 조정열)가 강북 전관(신관, 본관, 두가헌, 16번지)을 모두 아우르는 대규모 그룹전 ‘리멤버 미 (Remember me)’전을 9일 개막한다. 이번 그룹전에는 이승택ㆍ정서영ㆍ아이웨이웨이ㆍ시몬 드브뢰 묄러ㆍ리우 딩ㆍ루카 부볼리 등 세계적 아티스트 6인이 참여해 설치ㆍ회화ㆍ사진ㆍ영상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리멤버 미’ 라는 제목은 6명 작가가 공통적으로 작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이자 이번 그룹전의 기획 의도를 함축한 말이다. 작금의 사회 시스템에선 채택될 여지가 거의 없는 대안적 가능성을 상징하는 ‘유령’이란 개념을 짚어봄으로써 현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점을 반추해 보자는 것. 

이승택의 설치작업‘ 결국 예술은 쓰레기가 되었다’. 알맹이 없이 시류만 쫓는 미술을 쥐들이 들끓는 쓰레기로 표현한 작업이다.                                                                                                                              [사진제공=성곡미술관]

전시에는 이 시대 전위의 선봉에 선 작가 6명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유령’을 불러낸다. 유령의 잠재력에 귀기울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새로운 세계를 꿈꾸라고 귀띔한다. 작가들은 사회주의 몰락 이후 급팽창한 자본주의의 모순에 일침을 가하기도 하고, 끝없이 답습되는 미술계 구조를 비판하며 엉뚱한 관점의 작업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 미술계 ‘아방가르드의 선구자’인 이승택은 이 전시에도 참여했다. 사물에 존재하는 긴장관계나 불합리한 상황을 흥미롭게 시각화해 온 정서영, 중국의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 기존 이미지를 중첩시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는 시몬 드브뢰 묄러도 작품을 냈다. 또 현대의 꿈과 희망을 유머러스하게 풀어가는 이탈리아 작가 루카 부볼리, 중국의 당돌한 젊은 작가 리우 딩도 ‘머리로 생각해 보게 하는 미술’을 통해 기존 가치에 도전하고 있다. 10월14일까지.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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