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중순, 방글라데시 재무부가 2012ㆍ13 회계년도 예산안을 제출했을 때 가장 큰 논란을 가져온 것은 바로 블랙머니의 합법화였다. 정부가 제시한 ‘블랙머니 화이트닝’ 제안의 골자는 세금을 내지 않은 검은 돈의 소유자가 합당한 세금과 이의 10%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면 자금 출처를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돈으로는 주식 등 자본시장과 정부 채권은 물론, 도로나 수송 등 인프라 부문에도 투자가 가능하다. 검은 돈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국내투자를 촉진하고 자금의 해외유출을 막는 동시에 세수를 늘리겠다는데 목적이 있다.
이에 찬성하는 쪽은 정부 등 소수에 불과했고, 경제계, 학계, 언론계를 막론하고 대다수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투명성기구 방글라지부(TIB)는 부도덕한 제도라고 비난했고, 심지어 미국 정부까지도 우려를 표명했다. 반대자들의 논리는 명료하다. 검은 돈 합법화는 그동안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한 시민의 납세의욕을 저하시키면서 탈세자에게는 면죄부를 줘 탈세와 부정을 더욱 부추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국내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검은 돈 양성화 조항은 ‘2012년 재정법’에 포함되어 의회를 통과해 7월1일부터 발효됐으나, 그 실효성 등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블랙머니 또는 지하경제의 규모는 매우 큰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에 검은 돈 양성화를 제안하면서 재무장관이 추정한 지하경제의 크기는 국내총생산(GDP)의 42%에서 82% 수준. 참고로 방글라데시 GDP는 1100억 달러 이상이다.
지하경제가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큰 상황에서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블랙머니 양성화 제도를 실시해 왔다. 그럼에도 이번에 유독 관심이 높았던 것은 화이트닝을 위한 시간적 제한을 없앴고, 마지막 순간에 무산되었지만 불법으로 번 소득도 합법화 대상으로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블랙머니 화이트닝 제도가 과연 본연의 목적, 즉 합법화를 통한 국내투자 확대와 경제발전으로 연결될 것인지에 대해선 불투명하다. 일단 과거의 경험이나 사례를 보면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화이트닝을 통해 블랙머니가 가장 많이 제도권에 유입된 때는 과도정권 시기인 2007ㆍ2008 회계년이다. 당시 1만 6000여명이 총 13억 달러를 신고했으나, 이 금액은 당시의 지하경제 규모로 추정되는 160~300억 달러에 비해 극히 일부분이었다. 그나마 군부가 득세한 과도정부 때는 정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큰 손들의 자발적 신고가 많았으나, 현 정부가 출범한 2009년부터는 금액이 계속 줄어들어 지난 회계연도(2011/12)의 신고액은 5000만 달러에도 미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방글라데시의 조세행정이 느슨하고 법집행이 엄정하지 못해 탈세를 해도 적발되거나 처벌받을 가능성이 낮다. 행정당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도 제도의 실효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예컨대, 지난 2007ㆍ2008 회계연도에 자금 출처를 묻지 않는다는 정부 약속을 믿고 검은 돈을 신고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언론매체에 이름이 공개되어 곤혹을 치렀다고 한다. 또, 납세 대상자들의 세금 자체에 대한 회의론적인 시각도 걸림돌이다. 1억 6000만 인구 중 겨우 270만명이 납세자로 등록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겨우 70만명이 실제로 세금을 내고 있다.
이에 따라 방글라데시 내에서 이제는 실효성 낮은 블랙머니 화이트닝과 같은 제도를 고수할 것이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해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정부에서도 최근 조세행정 개선, 납세등록자 확대, 사회지도층의 납세의무 솔선수범 등을 위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코트라 방글라데시 다카무역관장 김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