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할리우드 영화인 스티브 정(34)은 최근 국내외 대형 흥행작 엔딩 크레딧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이름이다. 올해 미국 최고 흥행작이자 국내 개봉 외화 중 최다 관객동원 영화인 ‘어벤져스’와 블록버스터 ‘배틀쉽’, ‘토르’, ‘트랜스포머2’ 등에 참여했다. 

할리우드에서 그의 직책은 ‘컨셉트 디자이너’다. 캐릭터로부터 우주선, 비행체, 건축구조물 등 스크린에 구현되는 모든 미장센의 디자인이 그의 머리에서 출발해 손끝에서 완성된다. 

참여 작품의 면면에서 보듯 스티브 정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각광받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최고 수준의 컨셉트 디자이너다. 애니메이터로 출발한 같은 한국계인 ‘쿵푸팬더2’의 제니퍼 여 감독이 동양적인 선과 색감을 서구적인 디자인과 결합시켰다면 스티브 정은 기하학적인 선과 구조, 금속성의 색감으로 미래 첨단 사회의 현란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스크린에 구현한다. 오는 19~2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 2012’에 참석하는 스티브 정을 행사에 앞서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먼저 만났다. 

-당신은 파사데나 아트 센터 컬리지 오브 디자인(Pasadena Art Center College of Design, CA)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습니다. 애초부터 미국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활동할 계획과 전망을 갖고 있었습니까?

▶입학 전 파이널 판타지 게임 컨셉트 아트를 접하고 그에 대한 동경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트 센터를 가게 되었고 일러스트레이션 전공과 산업디자인 공부를 병행하여 컨셉트 디자인 분야로 나갈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컨셉트 디자이너’의 개념과 작품 제작에서 구체적으로 담당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제작 각 분야의 팀에서 감독이 추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비쥬얼의 방향을 현실화시키고 시각화시키는 일입니다. 캐릭터, 배경 혹은 작품에 나오는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그 프로젝트 전체의 디자인 테마를 결정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컨셉트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임무는 무엇입니까? 또 당신이 미국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각각의 작품에서 요구되는 것에 대한 세세한 부분은 설명하기 까다로우나 전반적으로 감독의 머리안에 있지만 정립돼 있지 않은 비쥬얼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컨셉트 디자이너는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디자인해야합니다. 또 아티스트들 상호간의 협력과 네트워킹을 잘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능력 못지 않게 보는 사람이 현실적이라고 느끼고 믿을만한 비주얼이라고 인식하는 디자인을 창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그 부분에서의 능력을 인정 받은 것 같습니다.

-당신이 컨셉트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는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현실화하고 싶어하는지를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창조해낸 디자인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독창적인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쿵푸 팬더2’의 제니퍼 여 감독을 비롯해 아시아계 인사들이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시아계만이 갖는 강점이 있습니까?

▶끈기와 그에 따른 지속적인 자기계발이라고 봅니다. 아시아인들은 기본적으로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강합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루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과 끈질긴 노력 그리고 특유의 놀라운 손재주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자신의 탤런트(재능)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다 보니 할리우드에서도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감독과 배우 이병헌 등 한국 영화인들의 할리우드 진출이 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한국계 스태프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물론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잠재돼 있던 숨은 실력자들의 능력을 할리우드에서도 드디어 알아 보는 것 같아 이 분야에서 일 하는 저로써도 좋습니다. 아직까진 미비하지만 앞의로 더욱 많은 한국 영화인들과 아시안들의 진출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아계로서 할리우드에서 성공하기까지 핸디캡이나 어드벤티지가 있었습니까?

▶솔직히 할리우드는 소수민족에게 힘든 곳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같이 사는 미국에서 핸디캡을 생각하기 보다는 아시아인 특유의 끈기와 노력을 보여주려 했고 그것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줬다고 봅니다.

-한국영화를 비롯한 아시아 영화들을 많이 접해봤습니까? 디자인의 측면에서 한국영화와 아시아영화, 할리우드영화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 영화를 많이 보진 못했지만 아시아영화들은 할리우드 액션영화와 다르게 인간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 한국영화에선 공상과학의 장르에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를 결합시켜 영상 뿐만 아니라 스토리 또한 곱씹을 수있게 합니다. 할리우드식 액션 혹은 판타지 영화들과는 다른점이죠. 할리우드 영화는 분명 다른 지역의 작품들 보다 스케일에서 더 환상적인 비주얼이 강점입니다. 지역과 인종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스토리텔링을 갖추고 있기도 하지요. 가끔 한국영화를 보면 글로벌 마켓에 진출하기위해서 한국적인 감성뿐만이 아닌 더 많은 외국인들도 공감할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당신의 디자인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엇입니까?

▶현실성 있는 디자인입니다.

-마지막으로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한국적 디자인의 감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한국적 디자인의 원형은 무엇일까요?

▶한국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미적 감각이 있습니다. 상당히 세련된 특유의 센스를 가지고있습니다. 무엇이 조화를 잘 이루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의로는 고대 한국 미술에서 볼 수 있는 밸런스와 부드러운 라인을 좋아합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